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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까치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조금 설렁설렁 읽기도 했지만 그렇다해도 너무 모르겠다. 자체 이야기와 소설 속 주인공 루카스/클라우스가 쓴 허구의 소설이 교차하고 있는 구성인 것 같기는 한데, 그니까 결국 액자식 구성이라는 말인데, 그 교차 지점의 포인트를 놓쳤다. 무엇이 액자 밖 소설이고 또 어느 것이 액자 속 소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순간부터 그냥 망했다 싶었다-0- 1부작 2부작까진 나름 괜찮았는데.. 3부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그래도 완주했다. 모르겠으면서도 계속 읽었던 이유 첫번째는, [살고 싶다]에서 읽은 바로 아래의 문장 때문이고



이제껏 수많은 책을 읽었다. 지루한 책도 있었고, 어려운 책도 있었지만 나는 중간에 책을 덮은 적이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의미가 있었다. 그만큼 나는 책을 좋아했다. 지루하다고 쉽게 책을 덮는 사람은 실은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삶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생은 덮을 수 없는 책이다. 결코 소설같이 흘러가지 않는 일상의 지루함이나 남루한 현실의 한 페이지도 책장을 넘기는 그의 손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이다. 94 [이동원, 살고싶다]



두번째는, 이해 못하는 답답함이 가로막고 있을지언정 그래도 끝에 가면 아! 하고 뒷목을 잡게 만드는 어떤 놀라운 반전 포인트를 캐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감이 계속 책장을 넘기게끔 하는 힘이 되었달까. (결국 이해 못한 채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말았지만) 끝내 결국 이해 못한다손 치더라도 내겐 이동진의 빨책이라는 비빌 언덕이 있었으니까.ㅋㅋ


마지막으로는 이 책을 내게 추천해준 선정쌤에게 후기를 써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인데, 왜 내가 내 입으로 먼저 나서서 후기를 써주겠다고 했는가에 대해 깊은 후회를 하면서 앞으로는 후기를 쓰겠다는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책을 권할 때에도 후기를 써달라는 과한 부탁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와, 그런데 그 과한 부탁을 굳이 잊지 않고 1년이 지나 후기를 써준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로군. 


내일의 출근 길, 이동진의 빨책을 들으며 이 책에서 내가 어떤 포인트를 잡아야 하는지를.. 알아내야겠다. 




"넌 슬퍼해야 할 일이 없겠구나?"

"네, 그래요. 저는 슬픈 일이 있으면, 기쁜 일로 마음을 달래거든요." 205


"자기는 죽도록 외롭게 살고 있다고." 277


".. 그 여자를 사랑하나?"

루카스가 문을 열었다.

"저는 그 단어의 뜻을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그 뜻을 모르는 것 아닐까요? 당신이 하는 그런 질문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질문이 자네 인생에서 가장 흔한 질문이 아니겠어? 때로는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걸."

"그러면, 당신은요? 당신은 그런 질문에 한번 답해보세요. 당신이 연설을 하면 청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더군요. 당신이 한 말들을 당신은 진심으로 다 믿습니까?"

"난 내 말들을 믿어야 하네."

"하지만 정말 마음 속 깊이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그건 나도 모르지. 나에겐 그 정도의 사치가 허용되지 않았다네." 290


"..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302


"잘 자, 마티아스. 너무나 고통스럽고, 너무나 슬플 때는, 그러면서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소리를 질러. 그러면 속이 시원해질 거야." 330


"생각에 깊이 빠지기 시작하면, 인생을 사랑할 수 없어." 403


어느 날 저녁, 사라가 잠이 들었을 때 나는 혼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의 거리를 소리 없이 달렸다. 전쟁 때문에 도시에서도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집집마다 창문들도 조심스럽게 불빛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놓았다. 나에게는 별빛만으로도 충분했다. 507


베로니크는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했다. 바보 같은 이야기들. 534


기계들의 소음은 내가 글을 쓰는 데에 도움이 된다. 그 소리는 나의 문장들에 리듬을 주고, 나의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오르게 해준다. 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