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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문학동네


1. 


어떤 책을 읽고 싶냐길래, 읽고 싶은 책 목록에서 얼른 한 권을 골라, "너무 한낮의 연애" 를 얘기했다.

그리곤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느 날, [너무 한낮의 연애]와 [애프터 유]를 선물 받았다.


책을 사읽지 않는 나로서는 신간이 읽고 싶어지면 오매불망 마음만 졸이다가

잊어버리거나, 혹은 운이 좋아 도서관에 비치되면 빌려 읽곤 하는데

아 이렇게 너무 읽고 싶던 신간을 선물 받아 읽게 되다니. 정말 기분이 너무 좋았다.


표지 좀 봐. 너무 예쁘잖아

이 책이랑 [쇼코의 미소] 같이 보고 있으면 정말 그 파스텔톤의 산뜻한 색깔이 뿜어내는 기운에

한여름 더위도 잊어버릴... 아 그건 거짓말. 




2. 


최근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통해서 단편의 맛을 조금 알게 되었는데,

단편집에 실린 여러 개의 작품들이 서로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주제의식 같은 것이 있고,

그 주제의식 아래 각 이야기를 맞춰 읽다보면 비록 단편임에도 장편을 읽은 느낌으로 책 한 권을 마무리지을 수 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고래]라는 장편소설을 읽고 나면 그 작품이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되듯이,

[너무 한낮의 연애] 또한 "없음"이라는 어떠한 공허한 이미지로 남게 된다는 것.

예전에는 단편을 읽고나면, 도대체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서 읽기를 꺼려했었는데

이제는 단편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을 터득했달까.


그 주제의식이라는 건, 물론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 가장 재밌겠지만

단편 초짜에겐 그게 또 만만한게 아니니까. 책의 맨 뒷표지를 보고 힌트를 얻을 수 있다.


- '아주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잠겨 있는 기억들, 그로부터 흘러나온 미세한 파장이 건드리는 '보통의 시절'

- 김금희의 소설은 그렇게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 것들, 망각한 것들에서 결국은 퍼져나오고 있었을 진동과 파장을 오랜 시간 후 다시 감지하고 대면하게 되는 이야기인 셈인데 (후략)


이렇게 힌트를 얻고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각 단편이 끝날 때마다 책 한 귀퉁이에 메모를 했다. 

메모 중 일부로는, 

'자기 세계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풀어내는 이야기.'

'있으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존재들.'

''아주 없음'이 아니라 '있지 않음'의 상태로 '없음'에 대해 추억'

'지난 과거. 아주 없음이 아닌 있지 않음의 상태로 그녀의 삶에 함께 하고 있는.' 등이 있다.


아 내 책으로 선물 받으니 이렇게 메모하기도 편하고 좋구마이.. 후후




너무 한낮의 연애
국내도서
저자 : 김금희
출판 : 문학동네 2016.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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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한낮의 연애


"사랑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떻게요?"

양희가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거지."

"그런 걸 뭣하러 생각해요."

(중략)

"아니, 네가 날 사랑한댔잖아. 킬킬킬킬.. 그 고백을 들은거잖아, 지금.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앞으로 우리 어떻게 되는 거냐고."

"모르죠, 그건.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고."

"알 필요가 없다고?"

"지금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말했는데,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까요."

필용은 황당했다. 얘가 지금 누굴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22


시선은 일방이어야 하지 교환되면 안 되었다. 교환되면 무언가가 남으니까 남은 자리에는 뭔가가 생기니까, 자라니까, 있는 것은 있는 것대로 무게감을 지니고 실제가 되니까. 28


양희야, 너의 허스키를 사랑해, 너의 스키니한 몸을 사랑해, 너의 가벼운 주머니와 식욕 없음을 사랑해,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너의 허무를 사랑해, 너의 내일 없음을 사랑해. 34


"선배, 사과 같은 거 하지 말고 그냥 이런 나무 같은 거나 봐요."

양희가 돌아서서 동네 어귀의 나무를 가리켰다. 거대한 느티나무였다. 수피가 벗겨지고 벗겨져 저렇게 한없이 벗겨져도 더 벗겨질 수피가 있다는 게 새삼스러운 느티나무였다.

"언제 봐도 나무 앞에서는 부끄럽질 않으니까, 비웃질 않으니까 나무나 보라고요." 37



# 조중균의 세계


너무 작은 소리라서 누가 슬리퍼 신은 발이라도 움직이면 묻혀버렸다. 48


그리고 그런 사무실의 어둠을 아주 따뜻한 담요처럼 덮고 원고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56


우리가 원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형태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65



# 세실리아


나도 그렇게 술을 외롭게 방치하는 편은 아니니까 91


유머에는 어느 정도 자학과 자기모멸이 있어야 먹히는데, 영 모르는구나. 92



 # 반월


그리고 방학이 시작될 즈음 내게 언제가 가장 행복하니, 물었다. 노래를 부를 때, 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노래를 하다가 죽었다고 할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럴 때 죽으면 가장 불쌍하거든. 좋은 생각이지만 왜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데? 단짝은 깜짝 놀랐다. 당연히 불쌍하게 죽어야 하는 것 아니야? 사람이 불쌍하지 않게 죽을 수 있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 106


앞서나가는 어떤 욕심들을 주춤주춤 감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