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잃어버렸다 비오지 않는 압구정에서.
비오는 역삼역에서, 자켓에 붙어 있는 모자를 뒤집어 쓴 채 폭우 속을 걸어야했다.
Rain 우연히 흘러 나온 이어폰 속의 비 노래를 부르는 김예림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시 기분이 몰랑몰랑 좋아졌다.
이게 다 우산을 잃어버린 덕분이라며 서운한 마음도 잊었다.
다시 비오지 않는 거리를 걷게 되었을 때
잃어버린 우산이 떠올랐다.
내가 머물렀던 파스쿠찌와 홍콩반점에 전화해보았지만
분실물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5년 전 엄마가 생일 선물로 받은 우산이었다.
5년도 더 된 헌우산을 대체 누가 가져간건지.
2015 여름 내내 신었던 하늘색 샌들과 참 잘 어울리는 우산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역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앨리스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읽으면서
난 또 잃어버린 우산을 떠올렸다.
길을 잃고 단어를 잊고 그렇게 기억을 잃어가는 앨리스의 삶을 상상하며
우산을 잃어버린 것쯤은 정말 대수로울 게 없는 것이라고.
잠깐 비교해서도 안될 것을 비교하기도 했다.
난 뭘 잃어버리는 일이 드물다.
그래서 잃어버리면, 그 잃어버린 물건에 대한 기억이 오래 간다.
미국 여행 중 잃어버린 ZEBRA CLIP ON 4색 펜 0.7
피렉스 휘트니스 회원증이 들어있는, 현수가 선물해 준 카드지갑
누군가에게 빌려준 것이 틀림없는, 책 『새의 선물』
그리고 오늘의 우산
밋밋하지도 않고 요란하지도 않았던 무늬의 하늘색 우산
이젠 흔하디 흔한 검은색 3단 우산에 정을 붙여 보아야지 (훌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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