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_24
사람들이 "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 하고 말하면
아니라고 말하라
사람들이 파티에 초대하면
대답하기 전에
무슨 파티인지 잊지 말라
누군가는 너에게
자신이 한때 시를 썼다고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종이 접시에 기름투성이 소시지볼을 들고
그것을 기억한 다음에 대답하라
사람들이 "우리 만나야 한다"고 말하면
"왜?"라고 말하라
그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잊어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어떤 것을 기억하려는 것일 뿐이다
나무들, 황혼녘 사원의 종소리
그들에게 말하라, 새로운 계획이 있다고
그 일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군가 식료품 가게에서 너를 알아보면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고 양배추가 되라
십 년 동안 소식 없던 누군가가
문 앞에 모습을 나타내면
그에게 너의 새 노래를 모두 불러주지 말라
결코 시간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한 장의 나뭇잎처럼 걸어다니라
언제든 떨어질 수 있음을 기억하라
자신의 시간을 갖고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라
- 나오미 쉬하브 나이, <사라짐의 기술>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고 비사교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시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삶을 살라고 충고한다. 형식적인 사교, 피상적인 만남, 소통 부재의 대화로 시간을 빼앗기지 말고 더 중요한 것, 잊어버리기에는 너무도 소중한 것들에 시간을 쏟으라고. 우리는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나뭇잎 같은 존재이므로.
이 시가 나에게 가슴 깊이 울림을 준 것은 많은 연락들과 만남 요청에 마지못해 끌려다니다가 어느 가을 아침 서늘한 공기와 함께 나비가 더 이상 날아오지 않고 낙엽이 지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이다. 만남을 사양하는 것은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때로는 자신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사교적이거나 매너가 없거나 우호적이지 않은 것과는 다른 실존의 문제이다. 유명한 저널리스트 빌 모이어스가 심장수술을 한 뒤 이 시를 항상 지갑에 넣고 다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소하고 시시한 일들로 채우기에는 삶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오미 쉬하브 나이(1952- )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의 옛 도시 라말라와 미국 텍사스를 오가며 자랐다. 인간에 대한 통찰과 따뜻함으로 '가슴의 문학'을 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서 이름을 '나오미 쉬하브 니예'로 잘못 표기한 것에 대해 시인에게 사과드린다.) "내 목소리가 들리나요? 내 글을 담은 작은 배가 당신을 향해 나아갑니다."라고 그녀는 어느 글에선가 썼다.
_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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