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온몸이 축축해지는 기분이었다. 화가 난 것과 비슷했다. 열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됐고, 조금 전의 자신을 용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이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이런 느낌을 잘 표현한 글을 읽고 싶었고, 그런 음악을 듣고 싶었다." (빛의 제국,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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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최근, 결론을 내렸다.
간접 경험을 원해서도 아니고
지식을 쌓기 위함도 아니며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부수적으로 딸려오겠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책을, 아니 소설을 읽는 이유는
내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아주 정확한 표현을 만나고 싶어서이다.
혹은 내 감정 상태에 대해 해답을 주는 그런 글귀를 찾기 위해서.
어떠한 감정이 들었는데 그것을 문자화하지 않고 가만히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어느 날, 읽던 책 속에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본 듯, 내 감정이 고스란히 문자화되어 녹아있다
그때 느끼는 그 기분 좋은 당혹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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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새로 핀 꽃은 언제나 느닷없이 발견된다. 봄꽃은 더 그렇다. 마트에서 커피 프림을 사 오다가 맞은편 빌라 단지 담장에서 노란 무더기의 개나리를 보았다. 아, 하고 감탄할 사이도 없이 그 안쪽 키 큰 나무에 매달린 목련 송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돌아서다가 이번엔 옆 건물 화단에서 산수유를 보았다.
봄이다. 꽃 세 개를 한꺼번에 보았다. (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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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이 나쁠 때도 마찬가지다.
정말 자주,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어떻게 말을 잘 못하겠다
분명 난 기분이 나쁜데 왜 기분이 나쁜지 나도 이유를 몰라서 가만히 벙찐다
그러다가 책을 읽는 중에 내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그런 표현을 읽으면
짜릿하고 흥분되고 막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누군가가, 도저히 내 손이 닿지 않는 등 언저리의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는 기분
'그래 이거야, 내가 이 말이 하고 싶었어!'
이미 사라지고 휘발 된 그 옛날의 감정이 뒤늦게 위로 받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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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하다
기분이 나쁘고 슬프기도 하고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거울 속의 내 눈을 마주치고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지금 왜 그러지?'
그래서 막 책이 읽고 싶어졌다
지하철에서만 읽던 소설책을 펴고, 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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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위로받지는 못했지만 그 어느 날에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아 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