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나의 워너비 요가티처 아름쌤은 새 둥지를 튼 곳에서 남편분과 함께 마라톤을 한다고 했다. 어멋 멋져요 했는데 나도 우연치 않게 등산을 했다. 멋지다. 단풍놀이가 목적이었으나 목적 달성은 실패했다. 현관문 열자마자 보이는 집 앞 단풍이 훨씬 예쁘다.
도봉산 우이암 코스였는데 등산은 아무리 쉬운 코스라고 해도 어렵기만 하다. 1년에 한 두번 오르는 산행이 익숙해질리 없다. 그래도 매번 오르던 북한산 족두리봉 코스보다는 도봉산 우이암 코스가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족두리봉은 오를 때마다 길을 잃는다. 스파르타 등산이 되어버린다. 아무래도 1년에 한 두번 산행을 하게 된 원인이 족두리봉에 있는 것은 아닐까. 흐흐 핑계대기.
"지금 말씀하신 그런 방식의 독서법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나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소설을 읽고 있는데 때마침 요즘 보고 있는 에밀 시오랑의 책이 서로 연결이 되는."
"그게 이제 목적성 책읽기때문인 것 같아요. (하하하하하) 이걸 해야되니까. 이거 얘기하면 좋겠는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메모를 하게 되고. 저는 사실 목적성 책읽기를 좋아하는 이유가요, 되게 희한하게, 어떤 소설을 쓰려고 마음 먹잖아요, 그러면 그런 소재가 막 와요. 근데, 일상이 바뀐 건 아닌데, 내가 바뀌어 있는거죠. 제가 더 많이 받아 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거고. 스펀지가 되는거죠. 최대한 많이 끌어들이려고. 목적성 책읽기, 목적성 글쓰기, 이런 걸 좋아합니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6회에서 김중혁이 했던 말이다. 정말 맞다. 내 주변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내 생각의 변화가 나의 모든 신경을 오픈하게 해 평소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을 것들을 자꾸 흡수하게 한다. 시크릿의 핵심 메시지, '생각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산에 가기로 마음 먹고 며칠 후 서점에 들렀을 때, 이병률의 여행에세이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훑어보게 되었고, 어쩌면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는 페이지, '행복한 사람은 산에 오른다'를 읽게 되었다. 양쪽 페이지 전부가 좋았지만 내가 유난히 마음에 새기게 된 문장은,
"인생에는 여러 길이 있지만 산의 길은 성실한 길이다. 어떤 산길이라도 가볍거나 호락호락한 길은 없으며, 아무런 느낌을 주지 않는 무색무취의 길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왔는데도 맨송맨송한 상태에 있거나 그 상태로 세상 먼지에 휩쓸려버린다면 그 사람은 산에 다녀온 것이 아니라 딴 데 다녀온 것일 것이다."
나는 산에 다녀와서 특별히, 맨송맨송한 상태 이상의 상태에 놓여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자꾸 곱씹어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산행에서는 이병률이 인정하는 '산'에 다녀온 내가 되어야지, 생각했다.
굳이 의식하려고 보니,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사람들. 수많은 산행으로 몸에 익은 '산행 예의'를 보여주시는 아저씨가 있었고, 화장실에서 옷을 다 여미지 않은 채 서둘러 나오는 아주머니들이 보였고 (지퍼는 올리고 나와주세요t_t..) 부인의 템포에 맞추기 위해 부인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남편이 보였다. 맨발로 뛰어가며 하산하는 아저씨를 보면서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와야 하는 분 아닐까, 계곡 근처에 모여 한잔씩들 하고 계신 분들을 보면서는, 이곳이 명당이구만, 묵묵히 걸어 올라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을 때, 아 내가 어느새 이만큼이나 올라왔구나, 하는 등의 생각을 쉼없이 했는데 그럼에도 난 여전히 맨송맨송한 상태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난, 앞으로도 1년에 한 두번만, 한발 한발 내딛는 것에 만족하며, 목적지에 다다라 김밥 먹는 즐거움으로 등산하기로 했다. 맨송맨송 이상의 어떤 감정을 느끼지 않고도 등산은 그 행위 자체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