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으로 출근한지 두달하고도 약 보름 만에 드디어 출근 길에 책을 폈다. '앉아서는, 그래, 자도 좋아. 대신 자리가 없어 서 있을 땐 책을 펴자. 하루 한 페이지를 읽어도 좋으니 일단 읽자.'라고 생각하며 약 6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들고 다닌 게 보름이 넘었다. 새해 첫 출근 날부터 들고 다닌 셈이다. 그 마음이 오늘에서야 행동으로 옮겨졌고, 최소한의 목표로 잡았던 한 페이지는 한 챕터가 되었다. 기쁘다. 산山만한 슬픈 일 틈 사이로 기쁜 일 투성이다. 퇴근 길, 월요일에만 오는 회사 앞 순대 포장마차에서 혼자 서서 먹은 김치 순대도 너무 맛있어서 기뻤다.
"넌 슬퍼해야 할 일이 없겠구나?"
"네, 그래요. 저는 슬픈 일이 있으면, 기쁜 일로 마음을 달래거든요." 205
"자기는 죽도록 외롭게 살고 있다고." 277
".. 그 여자를 사랑하나?"
루카스가 문을 열었다.
"저는 그 단어의 뜻을 잘 모르겠어요. 아무도 그 뜻을 모르는 것 아닐까요? 당신이 하는 그런 질문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질문이 자네 인생에서 가장 흔한 질문이 아니겠어? 때로는 그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걸."
"그러면, 당신은요? 당신은 그런 질문에 한번 답해보세요. 당신이 연설을 하면 청중들은 박수갈채를 보내더군요. 당신이 한 말들을 당신은 진심으로 다 믿습니까?"
"난 내 말들을 믿어야 하네."
"하지만 정말 마음 속 깊이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그건 나도 모르지. 나에겐 그 정도의 사치가 허용되지 않았다네." 290
"..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302
"잘 자, 마티아스. 너무나 고통스럽고, 너무나 슬플 때는, 그러면서도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소리를 질러. 그러면 속이 시원해질 거야."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