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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영화

[세 번째 살인] ★★★




영화가 끝난 후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대사들이 있다.



"여기선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죠."


"그건 좋은 얘기네요."


"세상에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인간도 있어요."





계속 맴도는 평이나 문장도 있다.



'누구나 믿고 싶은 진실은 있다' (포스터에 적혀 있는)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 각자의 마음에서 영화가 다시 시작'한다 (이동진 기자의 평1)


'단 하나의 정답같은 건 없을 것이다' (이동진 기자의 평2)








관객이 어디에 더 무게를 두어 생각하느냐에 따라 살인자가 바뀔 수 있다.

피를 묻힌 건 미스미일지 몰라도, 어쩌면 피살자의 부인, 피살자의 딸까지도 살인자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할 수 있다.

관객의 해석에 따라 살인자가 바뀐다는 의미에서 제목이 '세 번째 살인'일까 생각해 보았다.


충분히 머리가 아팠다. 이 정도 헷갈렸으면 됐다. (ㅋㅋ)

이런 해석이든 저런 해석이든, 사실상 '진짜 살인자'가 누구이며, 어느 말이 진실이냐를 파악하는 것에 의미를 둘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누구나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말 한 마디가, 이 영화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대표적인 메시지다.


마지막으로 시게모리가 미스미를 찾아 간 면회 장면에서도,

당신이 무죄를 주장한 것은 사키에가 끔찍한 경험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도록 배려한 것이지 않냐 묻는다.

그 말에, "그건 좋은 얘기네요."하고 놀라워하며 대답하는 미스미. 그럴 의도가 조금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변호사 시게모리는 본인이 이해하고 싶은 대로 이해하고, 

사키에와 비슷한 또래의 딸을 가진 아버지의 마음으로 감정이입을 한 셈이다.




나는 아무래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식의 영화가 더 좋은 것 같다.

내 머릿 속은 충분히 회오리쳤으나 내 마음은 큰 울림 없이 잔잔하게, 고요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두 가지인데, 그 중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장면이다.

"그건 좋은 얘기네요."




"시게모리는 미스미가 무죄를 주장함으로써 사키에가 끔찍한 과거의 상처에 대해 증언할 필요가 없도록 배려했다고 믿고 싶어한다. 마지막으로 면회할 때 그런 추측을 전하자 미스미는 "그건 좋은 얘기네요"라면서 감탄으로 두 번이나 되풀이한다. 하지만 "그건 좋은 얘기에요"라고 말한 뒤 곧바로 "저는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다고 늘 생각했죠"라고 토로할 때, 미스미는 그런 좋은 얘기에 이를 수 없는 자신을 단죄한다. " (이동진 기자의 어바웃 시네마에서)


내 기억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좋은 얘기네요."라고 말한 뒤 "나같은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라는 식의 이야기를 덧붙였던 것 같다. 즉, 자신의 행동이 사키에를 배려하려는 차원이었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같은 인간'도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면에서 좋은 얘기라는 뜻인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에게는 그런 좋은 의도는 없었으며,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라고 얘기할 때의 


시게모리의 자의적 해석과 미스미의 진실의 간극이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피가 튄 왼쪽 뺨을 오른 손등으로 닦는 미스미와 사키에의 포즈를 시게모리가 똑같이 할 때,

즉, 시게모리가 피가 튀지도 않은 왼쪽 뺨을 오른 손등으로 닦을 때,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소름이 돋았다.  

그 이유는 우리 이동진 평론가님의 어바웃 시네마에서 일부 발췌해왔다 (ㅎㅎ) 답답함이 조금 가시는 기분.



"그리고 동시에 그건 진실에 눈감은 채 타성으로 쉽게 단죄하는 법의 대리인들이 저지른 폭력에 대한 명명이기도 할 것이다. '피'가 튄 왼쪽 뺨을 오른쪽 손등으로 문지르는 행동은 극중 세 사람에 의해 한 차례씩 세 번 반복된다. 직접 저지른 미스미의 첫번째 살인, 마음 속 깊이 저지르고 싶었던 사키에의 두번째 살인에 이은, 진실에 눈 감음으로써 법의 이름으로 함께 저지른 시게모리의 세번째 살인을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


행동의 의미를 분석한 데 이어 제목이 '세 번째 살인'인 이유까지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또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여지까지.


" 그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면서도 지갑을 훔쳤던 것은 인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무기징역 확률이 높은 '원한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 사형 확률이 높은 '절도 후 살인'의 형태를 끌어들였던 것 역시 그렇다. 오래 전 한 사람을 죽였고, 다시금 또 한 사람을 죽이게 된 그는 이제 스스로를 죽이려고 한다. 그게 이 영화 제목이 세번째 살인인 이유다.








열심히 이해해야 하는 영화는 어렵다.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내겐 좀 더 좋은 영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