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행에세이를 집어들었다.
2014년에 딱 두 권의 에세이를 읽었고, 그나마도 10월에 읽은 것이 가장 최근이니 3개월만이다.
한 달 전 이슬이네 집에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함께 빌려온 책.
한참 뒤에나 읽게 될 줄 알았는데 마침 빌려놓은 책들 반납 날짜도 다가왔고,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갈 시간은 마땅찮고.
주말 오기 전까지 그 짬에 읽어야겠다, 고 별 기대없이 집어든 책인데 역시 이슬이가 추천해주는 책은, 믿고 읽을 만하다.
정말 마음에 드는 에세이, 그것도 여행에세이를, 간만에 만났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여행에세이였다면 이만큼 재밌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실은 그녀의 여행 이야기보다 그녀가 그녀의 아들 JB, 중빈이를 대하는 태도와 중빈이와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더 좋았다.
마치 자녀교육에세이를 보는 듯한 기분.
주변에 아이 낳은 친구가 생긴다면 이 책을 꼭 선물해주고싶다.
해가 뜨면, 아이가 "나가 놀자" 말하기 전에 나는 먼저 "나가 놀까?" 묻는 엄마였다. 밖에 나팔꽃이 소담스럽게 피어났는데, 사람들이 TV를 보느라 이를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내게는 신기한 일이었다. 김치 냉장고를 사고 에어컨을 사느라 세상 곳곳에 보물처럼 흩어져 있는 비경과 원주민들의 미소를 찾아 떠나는 일을 뒤로 미루는 것 또한 내겐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당연히 여느 엄마들이 언제쯤 한글나라를 시작할까 생각할 때 나는 언제쯤이면 아이가 제 발로 걸어 세상의 보물들을 찾아 떠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십 년이 다 된 고물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여행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예행연습이라도 하듯,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장아장 걸어나가 동네 골목골목을 탐험했다. 가장 소중한 우리의 하루일과는 언제나 흙과 개미와 지렁이와 함께였다. 13
중빈은 2개 국어를 한다. 엄마인 내가 능숙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편이기 때문에 돌 이후부터 꾸준히 2개 국어로 대화했던 것이다. 아이는 이 두 언어를 모두 '엄마의 말'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주었지만, 정작 아이가 두 나라 말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전까지 주변의 시선은 따가웠다.
"그러다 두 나라 말 다 못한다."
어른들은 혀를 찼다. 아마도 몹시 극성스런 조기교육 신봉자처럼 비춰졌기 때문이리라. 한국 사회에서 영어란, 취업이나 승진에 꼭 필요한 '잘 나기가 위한' 기회로 그 의미가 축소되어 있으므로 그러한 오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 일찍부터 2개 국어를 사용한 것은 집 밖에 지렁이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였다. 영어란 더 넓은 세상의 많은 것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알게 해주는 주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책 한 권을 고를 때에도 국문학에 그치지 않고 그 몇 십 배에 달하는 선택의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 팝송 한 곡이 그 음운 그 느낌 그대로 가슴에 알알이 박히는 것, 여행 시 관광지의 유적을 힐끔 보고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민과의 대화를 통해 그들의 삶 속에 잠겼다 나오는 것.
내가 아이에게 영어를 통해 만나게 하고 싶었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아이가 미래에 '남보다 더' 좋은 직장을 잡고 더 좋은 자동차를 살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쪼록 더 많은 세상의 즐길 거리를 찾아내 신명나게 놀면서, '남과 함께' 하는 기쁨을 알게 되기 바랐던 것이다. 14
"시간이 필요해. 시간이 흐르면 여행의 패턴이 정해질 거야. 너무 조급하게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힘들 땐 한 가지만 생각해. 지금 놓인 상황이 사실은 얼마나 오랫동안 바랐던 순간인지..." 32
철저하게 식욕이 없는 아이를 2년 반 가까이 억지로 밥을 먹이면서, 식욕이 없다는 것도 일종의 장애와 마찬가지여서 주위 사람의 끝없는 인내와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인간이 다 음식에 호감을 지닌 것은 아니며, 어떤 인간은 며칠씩 굶어도 여전히 음식이 이물스러울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86
여행을 할 때, 내겐 나름대로 지키고자 애쓰는 원칙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최대한 걷는 것이다. 무거운 가방이나 피로한 몸은 모두 내가 짊어져야 할 나의 무게이다. 길 위에서 내가 나의 무게를 느끼며 내 곁에 존재하는 것들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것, 그것은 여행, 나아가 인생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굵직한 교통수단은 이용하지만, 나머지는 웬만하면 걷는다. 어느 여행지에서나 택시는 내게 있어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이와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한 뒤로 나는 아이에게도 혼자 걷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자 무척 노력했다. 어떤 엄마들에게는 가베나 오르다 같은 것이 중요한 교육적 선택이 되는 시기에, 나는 아이를 부단히 데리고 다니며 걷게 했다. 열이 오를 때에도 졸음이 쏟아질 때에도 아이는 더 걸을 수 없을 때까지 제 힘으로 걸었다. 같이 놀던 제 또래 친구들이 모두 엄마에게 안겨 걸을 때에도, 아이는 묵묵히 혼자 걸었다. 그때 내가 해준 것은 네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벌써 큰 형아가 되었구나, 하는 속삭임과 뜨거운 포옹뿐.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주면 훨씬 수월한 상황에서도, 나는 일단 아이와 내 자신에게 인내할 기회를 먼저 주었다.
아이와 나는 되도록 느리게 걸으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먹을 휘두르며 싸우는 술 취한 사람도 보았고, 교통사고 현정도 보았다. 새싹이 돋는 봄, 차도를 건너려 애쓰는 애벌레도 보았고, 손발이 얼어붙는 겨울날 웅덩이에서 동사한 어미 쥐도 보았다. 그렇게 아이는 자라, 어느새 애벌레가 차에 치인다며 울음을 터뜨렸고, 동사한 어미 쥐를 묻어주며 어딘가에 있을 아기 쥐를 위해 과자봉지를 옆에 놓아주기도 했다. 부서진 자동차 헤드라이트 조각을 손에 집어 들고 보지 못한 교통사고를 추측하고, 사고로 다친 사람이 구급차로 병원에 실려 갔을까, 그 사람은 뼈를 다쳤을까, 의사 선생님은 붕대를 매어줬을까, 그 사람의 가족이 병원으로 찾아왔을까, 그렇지 않다면 혼자 외롭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의 갈래를 점점 키워나갔다. 걸으며 마주치는 모든 사물과 생명체들로부터 사람살이에 필요한 마음씀씀이를 배워나갔던 것이다.
치사하게도 내가 랄레에서 아이를 안고 고작 십여 미터 내려온 뒤 이제 걸을 준비가 되었느냐고 묻자, 아이는 고맙게도 "I'm ready"하며 품에서 내려온다. 160
"당신 남편은 당신 혼자 이렇게 여행을 하면 불안해하지 않나요?"
나는 이 덩치만 큰 남자가 가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인간관계에 대한 관념이 조금 흥미로웠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니 그는 내가 처음 생각한 것보다 많이 앳된 얼굴이었다. 나는 어린 학생에게 순진한 질문을 받을 때처럼 미소를 띠고 답해 주었다.
"전혀요. 그 사람은 나를 알고 나는 그 사람을 아니까요."
그는 나의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그는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아'본 적이 없는 듯했다. 한 사람을 안다는 것은, 한 사람이 가진 우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나아가 더 진한 애정의 세월이 흐르면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그 모든 과정을 그는 아직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주의와 태만으로 그 과정을 생략한 채 젊음을 잃는 것 또한 사실이다. 189
"I thank you, Angel."
한참동안 우리는 서로 하고 싶은 나머지 말을 가슴으로 전했다. 헤어짐은 슬프지만, 너를 만난 것은 그보다 훨씬 큰 기쁨이었다. 고맙다, 이제 내 인생은 너를 추억할 수 있어 조금 더 아름다워졌구나. 앙겔은 해변에서 오솔길을 향해 멀어지는 동안 몇 번이고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291
"부인은 어디 계신가요?"
한 터키인의 질문에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여행을 싫어한다고 대답했다. 짐작할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 할아버지는 이기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꿈은 이기적이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꿈이라는 것의 속성이 현실을 배반하기 때문에, 꿈꾸는 자를 얽어매고 있는 지독한 현실(생계나 가족 같은)에는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떤 이들은 이기적이기 않기 위해 꿈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메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까. 후회가 남지 않는 것만이 더 나은 것일 것이다.
(중략) 나는 지금도 가끔씩 그가 몽둥이처럼 둔탁한 영어 실력과 괴나리봇짐처럼 작은 배낭, 믿을 수 없이 형편없는 사진첩 하나만을 들고 세계 구석구석을 거침없이 누비는 것을 상상해보곤 한다. 그러면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든다. 우리가 흔히 늙음에 대해 가지게 되는 초라하고 우울한 기분, 그리고 지금 당장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생활자의 고민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간단히 짓뭉개버리며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듯하다.
가능한 것은 '언제라도' 가능하다. 네가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312
생각해보면, 우리는 한국에서도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비, 눈, 햇빛, 바람.. 차갑고 촉촉하고 따뜻하고 뜨거운 그 모든 자연의 손길에 대해 아이는 체력이 허락하는 데까지 열려 있었다. 열려 있는 만큼 아이의 체력은 강인해지는 것 같았다. 강인해진 만큼 아이는 더 많이 열리는 것 같았다. 324
그러나 곧 정신을 차렸다. '여행을 한다'라는 것의 정의를 피라미드 형태로 쌓아본다면, 그 피라미드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하는 것이 '다른 것에 대한 체험'이다. 그러니 여행지에서 익숙한 것을 고집하거나 자신과 다른 것을 무시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익숙한 것이 좋으면 떠나지 않으면 될 일이다. 하찮아 보이는 음식 한 가지에도 반드시 역사적 문화적 기원이 있는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의 그 많은 곳 중에, 터키의 그 많은 지방 도시 가운데, 일정에도 없는 아피욘까지 와서 이 냄새나는 음식을 마주하게 된, 소중한 확률에 의거한 예정된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324
아피욘에서 이스탄불까지는 8시간. 버스는 해 질 무렵에야 이스탄불 근교로 접어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제 곧 내릴 테니 신발을 신으라고 했다. 아이가 평균 신발을 신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분. 흔들리는 버스 안임을 감안해서 내리기 30분 전에 신발을 신도록 해야 했다. 아이의 운동화는 양쪽에 두 개씩 네 개의 찍찍이가 있고, 신발혀를 들어야만 발이 들어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는 신발을 신을 때마다 상당한 도전과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가 될 뿐, 아이의 손힘은 가까스로 신발을 건사할 수 있을 만큼 자랐으므로 나는 며칠 전 아이에게 '이제부터 그것은 너의 일이다'라고 넘긴 터였다. 아이는 내게 몇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힘이 들겠지만 네가 해낼 수 있다고 말해주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는 내 도움을 포기했다. 이런 과정을 며칠 더 반복하면 아이는 완전히 이 일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 옆 좌석에는 터키인 소년과 그 아빠가 앉아 있었다. 중빈은 먼저 신발을 뒤죽박죽된 순서로 신으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신발을 신는 방법을 제대로 터득해내느라, 아이의 얼굴에서는 땀이 흘렀고 입에서는 연신 신음이 새나왔다. 신 분, 이십 분... 소년의 아빠는 중빈을 열심히 쳐다보다가 이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내가 아이의 신발을 신겨주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십 초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다. 아이의 땀방울과 신음 소리는 시시각각 화살이 되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내 가슴을 찔러대고 있었지만 나는 최대한 인내했다. 아이가 해낼 수 없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부모의 무지이자 욕심이다. 그러나 아이가 해낼 수 있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부모의 무능력이다.
드디어 아이의 두 발이 신발 속으로 들어갔다.
"엄마, 내가 해냈어!"
아이의 조그만 얼굴이 땀과 성취감에 흠뻑 젖어 빛이 난다. 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고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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