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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고래] 천명관, 문학동네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예견컨대, 2015년을 마무리하며 올해의 BEST BOOK 5를 포스팅할 때, <고래>가 1위를 차지할 것 같다.


재밌어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나.

그가 내놓은 장편소설 중 <고령화 가족>(2010)과 <나의 삼촌 브루스 리>(2012)를 먼저 읽었는데, <고래> 같은 느낌의 소설들은 아니었다.

<고래>는 정말 스케일이 크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역시 두 권으로 나뉘어 출시될 만큼 스케일이 크긴 했으나 <고래>를 따라갈 순 없다.


10년도 전인 2004년에 제 10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이 작품을 두고 

이제와서 침 튀겨가며 너무 좋다고 독서평 쓰는 것이 뒷북인 줄은 알지만

이제라도 만난 게 어딘가 싶게 감동적이고 감격적이다.

(최근에 읽은 정말 재밌는 소설이 있다며 여기저기 <고래>를 추천했는데, 그거 옛날에 나온 소설 아니냐는 시큰둥한 반응들.ㅋㅋ)


스케일이 큰 만큼 리뷰도 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감이 안잡힌다. 그냥 횡설수설하기로.




* 문학동네소설상 1회부터 18회까지의 수상작 모음 확인하기 ▶ http://youneverknow.tistory.com/63



고래

저자
천명관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4-1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고래] 출간!제1회 [새의 선물...
가격비교


[등장인물] 금복, 박색의 노파, 애꾸눈, 약장수, 생선장수, 걱정, 칼자국, 쌍둥이 자매, 점보(코끼리), 춘희, 文, 수련, 철가면, 간호사, 트럭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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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복적인 어구(語句)


이 소설에는 한 가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어구(語句)가 있다. "그것은 -의 법칙이었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하다가 1/3 지난 시점부터 뭔가 자꾸 눈에 띄는 어구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인지하고나자 쉼 없이 눈에 띄는 "블라블라 법칙"들.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 또 나올 때 됐는데"하면서 내가 먼저 블라블라 법칙을 찾고 있었다.


읽다가, 이 빈도대로라면 토탈 50번은 나오겠다며 나 혼자 내기를 했는데, 세어보니 56번.ㅋㅋㅋ 이겼다 올레


-그것은 자연의 법칙이었다. 10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23

-그것은 무조건반사의 법칙이었다. 26

-그것은 소문의 법칙이었다. 28

-그것은 관성의 법칙이었다. 29

-그것은 아랫것들의 법칙이었다. 30

-그것은 유전의 법칙이었다. 32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35

-그것은 그들의 법칙이었다. 38

-그것은 생식(生殖)의 법칙이었다. 61

-그것은 화류계의 법칙이었다. 73

-그것은 가속도의 법칙이었다. 85

-그것은 무지의 법칙이었다. 85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86

-그것은 거리의 법칙이었다. 97

-그것은 금복의 법칙이었다. 100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107

-그것은 구애의 법칙이었다. 108

-그것은 비만의 법칙이었다. 111

-그것은 운명의 법칙이었다. 113

-그것은 무의식의 법칙이었다. 116

-그것은 습관의 법칙이었다. 119

-그것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었다. 120

-그것은 작살의 법칙이었다. 121

-그것은 세상의 법칙이었다. 129

-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 129

-그것은 거지의 법칙이었다. 130

-그것은 흥행업의 법칙이었다. 136

-그것은 구라의 법칙이었다. 140

-그것은 진화의 법칙이었다. 147

-그것은 아버지들로부터 이어진 그들의 법칙이었다. 158

-그것은 관청의 법칙이었다. 172

-그것은 유언비어의 법칙이었다. 202

-그것은 구호의 법칙이었다. 205

-그것은 만용의 법칙이었다. 209

-그것은 자본주의의 법칙이었다. 220

-그것은 헌금의 법칙이었다. 222

-그것은 유전의 법칙이었다. 245

-그것은 생명의 축복이자, 자연의 법칙이었다. 255

-그것은 이념의 법칙이었다. 262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279

-그것은 경영의 법칙이었다. 286

-그것은 알코올의 법칙이었다. 296

-그것은 더러운 상업주의와 영합한 플롯의 법칙이었다. 298

-그것은 감방의 법칙이었다. 316

-그것은 신념의 법칙이었다. 320

-그것은 자본의 법칙이었다. 340

-그것은 토론의 법칙이었다. 343

-그것은 사랑의 법칙이었다. 347

-그것은 지식인의 법칙이었다. 348

-그것은 감방의 법칙이었다. 350

-그것은 독재의 법칙이었다. 351

-그것은 다시 중력의 법칙이었다. 367

-그것은, 오랜 만에, 사랑의 법칙이었다. 379

-그것은 다시, 이념의 법칙이었다. 395

-시청률과 대중성의 법칙. 415


이 외에도 반복성으로 재미를 추구한 문장들이 많았다. 반복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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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길한 전조(前兆)


이 소설에서 자꾸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천명관 작가님式의 [사전 예고] 기법이 있었다.

언해피엔딩을 사전 예고하다니.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겼더랬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사전 예고] 기법이 나름 "다시 읽는 재미"를 선사해주어서 묘하게 매력적이라고 결론 내림.

(아래의 문장들은 눈에 띄는 대로만 추려놓은 것일 뿐 [사전 예고] 기법 문장의 전부는 아니다.)


-아마도 이때가 노파의 일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을 터인데, 그나마 그녀의 더러운 팔자는 행복을 오래 놔두지 않았다. 35

-두 사람은 훗날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 복잡한 인연의 끈을 이어가게 되는데, 이때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맞이하게 될 미래의 운명은 짐작조차 못 하고 있었다. 45 

-그러나 물화(物貨)의 덧없음이여! 생선장수가 그 모든 것이 한낱 허상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60

-하지만 이때만 해도 그녀는 그날의 사건이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어노을지 짐작하지 못했다. 79

-그런데 금복은 그 목걸이에서 뭔가 불길한 기운이라도 감지한 걸까? 114

-그러고는 마침내 자신의 열정을 모두 불사르고 끝내는 연기처럼 덧없이 스러져갈 이승의 마지막 종착지, 평대를 향해 떠났다. 141

-그렇다면 혹, 노파의 복수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게 아닐까? 그래서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그녀의 저주가 시작된 건 아닐까? 예사롭지 않게 많은 파란을 겪었던 금복에게 그런 행운이 찾아온 것은 단지 우연일까? 거기에 혹 다른 비의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이야기는 계속된다. 그 모든 불길한 질문들을 뒤로 한 채. 164

-왜냐하면 그것은 몇 년 뒤, 시장 어귀에서 일어날 한 불행한 사건에 대한 어렴풋한 예감이었기 때문이었다. 182

-하지만 몇 년 뒤, 그녀는 단 한 번의 착오로 인해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인물을 한 명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나친 믿음의 대가였다. 195

-그리고 이때쯤 그는 자신의 먼 조상으로부터 시작된 불행의 그림자가 자신에게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훗날 다시 만나 한번 더 특별한 인연을 만들지만 그것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의 일이다. 253

-소리없이 땅거미가 내리듯 저주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281

-가혹한 운명은 아직도 그녀 앞에 더욱 모질고 혹독한 시련을 남겨두고 있었다.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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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명관 작가님式의 개그(라고 생각되는 문장들)


무심한 듯 적어놓은 문장 속에서 나 혼자 수번을 낄낄낄 댔다. 아 진짜 닮고 싶다, 천작가님式 개그. 

이렇게 적어놓으면 하나도 웃기지 않지만 이야기 안에서 읽으면 진짜 입모양이 빙그르르. 특히 '귀여운 병아리'는 박장대소급이다.


-없는 돈에 의원을 불러오고 약을 해대느라 아무리 눌러짜도 똥밖에 안 나오는 상황에 이르렀으니 뭔가 수를 내는 수밖에 없었지만.ㅋㅋㅋㅋㅋㅋ 86

-손가락 여섯 개를 잃게 된 사연.ㅋㅋㅋ 96

-시간이 너무 늦어 은근히 걱정이 걱정되었다.ㅋㅋㅋ 105

-한 해가 흘렀다. 그 동안 걱정의 몸무게 말고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ㅋㅋㅋㅋㅋ 111

-역시 그걸로 선택하길 잘했어. 그걸 입으니 뭐랄까... 마치 귀여운 병아리 같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80

-이윽고 대극장을 지은 모든 원인을 제공한 남북회담. 그러나 호텔 직원이 방을 잘못 배치하는 바람에 극장이 보이는 반대편에 투숙하게 된 북쪽의 특사들. 그래서 실은 아무것도 못 보았다는 믿을 수 없는 후일담. 호텔 직원의 해고와 의전 담당자의 문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415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춘희에겐 보통의 새끼들이 생명체의 긴 역사를 통과하는 동안 수많은 인위선택을 거쳐 유전적 형질로 발전시켜온 생존의 전략, 말하자면 모성을 자극하고 보살핌을 유도하는 특징들, 또 말하자면 순진무구하고 커다란 눈동자와 투명한 피부, 다시 말하자면 작고 앙증맞은 코와 그 어미들이 언제나 부비고 싶어하는 부드럽고 동그란 뺨,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디즈니의 만화 주인공들이 가진 특징들, 예쁜 것을 이기는 단 하나의 무기... 즉, 귀염성이 없다는 거였다.ㅋㅋㅋㅋ 132

-희대의 사기꾼이자 악명 높은 밀수꾼에 부둣가 도시에서 상대가 없는 칼잡이인 동시에 호가 난 난봉꾼이며 모든 부둣가 창녀들의 기둥서방에 염량 빠른 거간꾼인 칼자국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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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래서 정리하자면, 


이것은 [붉은 벽돌의 여왕, 춘희]에 관한 이야기. 그렇지만 춘희보다는 춘희의 엄마, 금복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이야기.

금복이 부둣가에서 본 대왕고래에 퍽 인상이 남아 그것을 본따 대극장을 만들고, 결국 대참사로 이어지는 이야기. 그래서 제목이 [고래]

노파의 예언 속에서 등장하는 큰 물고기 역시 고래를 뜻하는 바.


큰 물고기가 산속에 떨어지면 불기둥이 치솟아 하늘에 닿고

남쪽에서 온 사내가 술에 취하면 너희의 자손은 검불처럼 쓰러지리라.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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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게 남은 문장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어디론가 다른 세계로 건너왔으며, 따라서 앞으로 펼쳐질 인생도 이전과는 다를 거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 너머로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래 울진 않았다. 그녀는 뭐든지 복잡하게 생각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고향을 떠나올 때도 그랬고 생선장수의 삼륜차에 냉큼 올라탈 때도 그랬다. 55


이야기란 본시 전하는 자의 입장에 따라,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게 마련이다. 독자 여러분은 그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 된다. 그뿐이다. 117


그 동안 새순처럼 여리고 무구한 춘희의 감성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춘희는 자신의 상처를 어떤 뒤틀린 증오나 교묘한 복수심으로 바꿔내는 술책을 알지 못했다.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치되지 않았다. 350


그는 벽돌에 손을 댄 채 가슴이 벅차올라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리고 벽돌을 만든 사람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에 머리가 숙여졌다.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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