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욕심이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그 자리에 미리 가 기다리면서
상대방보다 내가 먼저 알아보고
내게로 걸어오는 자연스러운 모습을 잠시나마 훔쳐보고 싶은 욕심.
미리 활짝 웃고서 그를 환하게 맞이하고 싶은 욕심.
홍대역, 수많은 인파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라는 시행이 떠올랐는데 그 시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저 세 행만 수없이 되뇌이다가 그녀를 만났다.
뒤늦게 떠올라 찾아보니,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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