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드디어 김연아 워킹화를 벗고 손연재 워킹화로 갈아 신었다.
작년 9월 쯤엔 김연아 워킹화도 '새 신'이었는데, 약 반년 가량 고생하고나니 발뒤꿈치 부분이 허옇게 헐어 있었다.
구두는 싫어, 걷는 건 좋아, 너 말고 다른 신발은 없어.
이 녀석, 한 달에 겨우 두 세번쯤 쉬었나 싶다.
반년만에 씻으러 간 김연아 워킹화는 3일 후에 '나빌레라' 하며 날아올 것 같다. 이제 좀 쉴 수 있겠다며.
오늘 작정하고 매장으로 달려가 일 초의 망설임 없이 손연재 워킹화를 손에 쥐고,
250 주세요, 신고 갈게요.
매장 바닥에 김연아 워킹화와 손연재 워킹화가 나란히 놓여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나도 참, 광고의 영향을 많이 받는구나, 생각하다가,
하루에 한 번씩, 심지어는 한 번에 두 명씩 나와 커플 운동화를 신은 사람을 거리 곳곳에서 만나게 될까봐 잠깐 아차 싶었다.
어느 날엔가, 지하철 의자에 앉아 있는데, 내 앞에 서 있는 40대 아주머니와
내 건너편에 앉은 사람이 모두 같은 색의 김연아 워킹화를 신고 있어서 조금 민망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예쁜 건 어쩔 수 없으니, 이미 내 오른쪽 발이 들어가 있는 손연재 워킹화의 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왼쪽 발도 마저 집어 넣었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체감상 김연아 워킹화보다 더 가벼웠다.
어쩌면 김연아 워킹화에는 6개월 간 내 발이 닿은 곳곳의 먼지들이 뒤엉켜 있어서 더 무거웠는지도 모른다고, 정말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나도, 두 켤레의 운동화를 가진 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들떴다.
그 날의 옷 색깔에 맞춰서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선택의 여지. 나는 그것이 부富 혹은 넉넉함의 기준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운동화 한 켤레를 사서 그것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신다가, 남들에게 보이기 민망할 때서야 마지 못해 새 신을 산다.
근데 그 '새 신'도 결국엔 한 켤레 뿐이라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또 그 신발만 매일 신어야 한다.
그렇게 매번 '한 켤레'만 있는 것.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나는 요즘 이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태가 매우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제 운동화만큼은, 고를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나도, 두 켤레의 운동화를 가진 여자가 되었다.
새 신을 신고 뛰어 보자 팔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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