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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단편소설 읽기


단편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다 읽고 나면, 한 가지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주인공도, 스토리도 없기 때문이었다. 

장편소설 속 주인공의 삶에 매료되어 한동안 곱씹어 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단편소설을 읽을 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김애란의 '비행운'을 만나고 난 뒤에는 조금 달랐다. 

비행운의 대부분의 단편이, 제목만 읽어도 기억이 났고, 심지어 마지막 이야기 '서른'을 읽고나서는 

내가 겪었던 지난 일들이 함께 오버랩되면서 주인공에게 느꼈던 뭔지 모를 아릿한 마음이 지금까지도 느껴진다.


그리고 뒤이어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를 읽었다.

여운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비행운'보다는 못했다. 

그렇지만 '달려라, 아비'의 [해설]을 읽고 나서,


무릎을 탁 쳤다.

단편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기에 있구나.


단편이라고 다 동떨어져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엔 한 두가지의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

다른 삶을 사는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식에는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


단편소설은 그 단편들 간의 숨은 연결고리를 찾는 데에 재미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재미는 [해설]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문학적으로 뛰어난 사람의 전유물일 테지만.



"김애란의 소설에서 아버지는, 긍정적인 양상으로 제시될 경우 생명의 도약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아버지를 달리게 만드는 상상력은 아버지에게 잠재된 의미(힘의 고양)를 긍정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그것은 삶의 고통을 긍정하지 않겠다는 숨은 의지이며, 생명의 고양을 꿈꾸는 자기 자신을 위한 배려이다."


"내면의 타자로서의 나, 또는 타자화된 내면성으로서의 나, 김애란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기본항이다. … '나는 어떤 인간인가.' 김애란 소설의 독특한 질문방식이다. 그는 '나는 누구인가'라고 정체성을 전제한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 다만 그는 묻는다. '나는 어떤 인간인가.' 나의 타자성을 전제로 한 물음이다."



결국 그 숨은 연결고리는 작가 특유의 가치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단편소설을 제대로 읽고 나면, 작품뿐 아니라 작품 너머 작가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