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편의점에서 제일 맛있는 안주예요." 최대리가 말했다. 세 알씩 진공 포장된 메추리알조림이었는데, 사실 나도 좋아하는 안주였다. "이거 세 알과 맥주 한 캔이면 딱이지. 내 친구 중에는 이거 세 알로 맥주 세 캔을 먹는 놈도 있어." 내가 말했다. 최 대리가 자기 친구 중에도 그런 녀석이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날 나는 최 대리의 취미를 알게 되었다. 최 대리는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수를 세었다. (중략) 그러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참 쓸모없는 취미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해주었다. "맞아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면서 행복해하는지 알면 깜짝 놀랄 거예요." 224
2015년 제 3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윤성희 작가의 '휴가'라는 소설 중 일부이다. 정말 평범하고도 소소한 일상을 그린 장면인데다가 글의 흐름상 생략되어도 상관 없을 만큼 무게감이 없는 문단인데도 불구하고 몇 번을 피식 피식하면서 읽었다. 편의점에서 제일 맛있다고 생각하는 안주가 꼭 같은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 묘하게 반가운 기분에도 공감했고, 최대리가 갖고 있는 것 만큼이나 참 쓸모없는 취미를 나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GS25에서 판매하는 감동란을 좋아한다. 너무 맛있어서 이사람, 저사람한테 홍보하고 다니는데, 그렇게 소개 받은 사람이 감동란을 먹어보고 진짜 맛있다고 인정하고 감동하는 반응을 보면 그게 또 그렇게 감동이다. 정말 감동란은 먹을 때마다 감동이다. 어쩜 그렇게 알맞게 반숙이며, 알맞게 짭쪼롬한지. 소금도 필요 없고 사이다도 필요 없다. 그런데 그 감동란을, 아는 분이 두 쪽 중 한 쪽을 남겨서 내게 먹어보라며 건네주시는데, 와, 그 감동란의 감동을 아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그 감동이란 또 어마무시했더랬다. 너무 반가워서 호들갑을 떨며 약 30초간 감동란 예찬.
내가 갖고 있는 쓸모없는 취미는, 길을 걸으며 눈에 띄는 차량 번호 네 자리의 숫자를 하나씩 더하여 3으로 나눠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차량 번호가 7021이라면, 7+0+2+1을 한 뒤에, 앗, 10이네, 3으로 안나눠지네, 하고 마는 것. 또 다른 차량 번호 2508의 각 숫자를 더해보면 3으로 나누어 떨어지니까, 암산하여 836이라는 결과물을 내보고, 그게 또 3으로 나누어지는지 확인해 본다. 836은 각 숫자를 더하면 17이니까 실패. 그럼 그러고 만다. 그런데 3으로 계속 나눠떨어지는 차량번호를 만나면, 진짜 이유없이 재밌다. 행복까지 느끼는진 모르겠고. 학창시절 무려 수포자였던 내가 머릿 속으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하며 걷는다.
책을 읽는 건 그러니까, 소설 속 상황과 같으면서도 다른 나의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재미, 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