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 다시 맨 앞으로 가 지은이 소개를 읽으면 이 이야기가 조금 더 흥미롭게 다가오는데, 그것은 소설 속 주인공 '게이코' 인생의 18년을 차지하는 '편의점'이란 공간이 실제로 지은이 무라타 사야카가 머물렀던 공간이며, 무려 그 햇수까지도 일치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은이ㅣ무라타 사야카
다마가와 대학 문학부 예술학과 재학 시절부터 편의점 알바를 했으며, 졸업 후에도 취업하지 않고 18년째 편의점에서 일하며 틈틈이 소설을 써왔다. (중략) 저자는 지금도 주 3회 편의점에 출근하며 (후략)
『편의점 인간』을 읽으면서 편의점이 돌아가는 시스템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상세했음에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는데, 편의점이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공간이기도 하면서 지은이의 18년 간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기때문인 것 같다.
2.
이 이야기는 "편의점 인간이면서, 편의점 인간들 사이 편의점 인간이 아닌 게이코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편의점 인간'이라는 표현을 중의적으로 해석해 보았는데, 첫 번째는, 주인공 게이코가 18년 동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그녀의 삶이 편의점의 시계와 함께 돌아가게 되어 게이코 자체가 '편의점 인간'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모든 것이 매뉴얼대로 움직여지며, 사람들의 눈에 띄기 위해 배치되고, 날씨며 주변 상가에 의해서도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 '편의점'이란 곳이 결국 '평범한 인간'들과 다를 바 없다고 보아 그들을 '편의점 인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아리송하게도 '편의점 점원'으로서만 평범하게 보일 수 있는 주인공 게이코
3.
많은 사람들이 '편의점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주변 사람들의 성가신 질문들과 간섭들에 공격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부분 '편의점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올해 서른이 되면서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지자 나도 모르게 위축이 되질 않나, 명절에 만난 어르신들이 새해 덕담으로 '결혼해라' 하는 말을 듣고 성질이 나지 않나, 아직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내 위치에 대해 점처럼 작아지질 않나, 이런 마음 쓰임들을 보면 결국 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아가는 속도에 맞추어 살고 싶은거구나,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내 뜻대로 되질 않는 걸 어째.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최근까지 주변에 다양한 삶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덕분에, 나 스스로 느끼는 불안감과 내 삶에 함부로 개입해 들어오는 침입자들에 대해 조금은 더 태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길러진 것 같다. 그들이 추구하는 현재의 행복, 웃고 춤추고 즐기는 지금 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 그 즐거움의 가치를 높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조금 더 단단해지고, 많이 성장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4.
최근 운전연수를 받으면서 만난 선생님의 나이는 마흔 초반이었는데, 그 나이를 듣고서도 난 '그럼 결혼했겠구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보통은 결혼할 나이지만 그래도 결혼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가 아니라, 그냥 전혀 의식이 되지 않았던 것. 내 머릿속에 '나이'와 '결혼'의 연결고리가 없었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다른 얘기를 하던 도중에 "아이가 이번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서 "아, 결혼하셨어요?"라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 '깜짝 놀란' 이유가 그 선생님이 결혼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고, 어머, 내가, 그러니까 내 사고체계가 앞서 말한 그 다양한 삶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훨씬 많이 물들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굉장히 좋은 쪽으로. 타인의 삶을 특정한 잣대로 판단하여 그들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는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 것.
그러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은, 어찌나 중요한 것인지.
5.
이 소설의 초반부에는 말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난 그 부분에서 굉장히 많은 공감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물들이기보다는 물드는 사람이라서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서 정말 많은 것들을 흡수하곤 하는데, 특히 말투와 웃음소리, 글씨체, 이렇게 세 가지가 내게 쉽게 옮아온다.
내 글씨체는 중학교 때 친구 A에게서 옮았고, 내가 갖고 있는 웃음소리 중 '하!'하고 빵 터트리는 웃음소리는 대학 친구 B에게서 흡수했으며, 내가 갖고 있는 말투 중 전화로 모르는 타인에게 질문할 때 종종 나오는 투는 전 회사 동료 C에게서 옮은 것이다. 그것 외에도 말하는 도중에 잠깐 쉬어가는 포인트라던지 강조점 등 많은 것들이 주변 사람들의 그것들을 많이 닮았다고, 나 스스로도 느낀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결코 내가 '의식'하고 물든 것이 아니라는 것. 자주 만나는 사람, 그 사람들의 것이 나도 모르게 내게 묻어왔다.
그러니까 내 곁에 두는 사람은 또 얼마나 중요하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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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말투에 관해서 말하자면, 가까운 사람들의 말투가 나에게 전염되어 지금은 이즈미 씨와 스가와라 씨의 말투를 섞은 것이 내 말투가 되어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전에 스가와라 씨의 밴드 동료들이 가게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그 여자들의 옷차림과 말투는 스가와라 씨와 비슷했고, 사사키 씨도 이즈미 씨가 들어온 뒤로는 "수고하십니다!"하는 말투가 이즈미 씨와 똑같아졌다. 이즈미 씨가 전에 일했던 가게에서 친하게 지냈다는 주부가 일을 도우러 왔을 때는 옷차림이 이즈미 씨와 너무 비슷해서 착각할 뻔했을 정도다. 내 말투도 누군가에게 전염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전염하면서 인간임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35
스가와라 씨의 말투를 베끼고 말꼬리를 조금 어른스럽게 바꾼 말투로 이즈미 씨에게 대답한다. 스가와라 씨는 스타카토가 붙은 것처럼 조금 탄력 있게 톡톡 튀는 말투를 쓴다. 이즈미 씨와는 대조적인 말투지만 두 가지 말투를 섞어서 말하면 이상하게도 딱 좋다. /37
"어서 오세요. 안녕하십니까!"
이 순간이 아주 좋다. 나 자신 속에 '아침'이라는 시간이 운반되어 오는 듯한 느낌이 든다. /41
"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에요.(후략)" 146
"언니는 편의점 일을 시작한 뒤 점점 더 이상해졌어. 집에서도 편의점에 있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표정도 이상해. 제발 부탁이니까 평범해져."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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