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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까치


최근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았는데, 애써 말문을 트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리가 있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이 있다. 오늘은 후자였다. 본래 1인 1팀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인데, 그저 한 데 모여 교육을 듣는 것이었기 때문에, 어제 잠도 충분히 못 잤겠다, 그냥 입 다물고 걸어가고 있었다. 처음 만난 열 두명의 사람들, 약 30분간의 침묵. 그런데 옆에서 나란히 걷던 분이 갑자기 지나가는 까치를 보고 "까치 정말 오랜만에 봐요."라고 말하며 내게 눈을 맞추었다. 사실 우리 동네에선 까치가 종종 나타나 까악 까악 하고 울기 때문에 오늘 만난 까치가 그리 신기하진 않았지만 "그러게요." 라고 맞장구를 쳤고, 그 분은 다시 "서울에 까치 별로 없잖아요." 하며 대화를 이었다.


나는 일단 하고많은 대화 소재 중에서 '까치'를 앞세워 말문을 텄다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어디 사세요?" "무슨 일 하세요?" "남자친구 있어요?" 같은 것 말고, 지나가는 까치가 반가워서 내게 말을 걸어온 것, 그것이 나는 너무 신선하여,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정말 깔깔깔깔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때로는 눈을 맞추고, 때로는 그냥 앞을 바라보며 처음 만난 서로가 어색하지 않을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 역시, 함께 걷는다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생각했다. 거리 곳곳에 있는 사사로운 것들이 이야기 소재가 되어주었다. 어딘가 실내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다보면, 사실은 의도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어쩔 수 없이 사적인 질문을 하게 된다. 갑자기 맥락 없이 까치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는 일이니까.


함께 걷던 길은 몽촌토성이었는데, 곳곳에 세워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옛스러운 노랫가락이 또 소재가 되어, 사극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저 사극 엄청 좋아하거든요. 요즘 한성별곡이라고, 옛날 사극인데 다시 보고 있어요." 나는 사극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사극이 좋아 이미 종영된 것을 다시 보기한다는 것이 또 신기해서, 애써 기억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내 머릿속에 한성별곡이 남았고, 집에 와 이 글을 쓰며 한성별곡을 검색해보니까, 마치 '네멋대로 해라'와 같은 느낌의, 아는 사람만 아는, 그렇지만 강한 팬층을 갖고 있는 드라마라고. 


그 분은, 몽촌토성 근처에서 점심을 먹을 량으로 수요미식회에서 나온 떡볶이 맛집을 알아보고 왔다며 꽤나 계획적인 면까지 보였는데, 사실 우리의 교육은 몽촌토성에서 시작해 마포역에서 마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분이 가고 싶었던 떡볶이 집은 결국 못가게 되었다. 아마 몽촌토성에서 교육을 마쳤다면, 나는 떡볶이를 많이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함께 먹지 않겠냐고, 물었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만 좋아하던 그 분과는 이제 다시 만날 일이 없다. 정말, 어느 트로트 가사처럼 이름도 성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 까치만 보면 생각이 나겠지(ㅎㅎ)



함께 나눈 대화의 양은 함께 걸은 시간과 비례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래서 걷는 것이 좋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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