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있는 집의 구조를 그대로 간직한 채,
구석구석 다른 컨셉으로 초대하는 서점
벽지를 뜯다가 발견한 오래된 신문의 흔적과
어떤 책을 읽을 지 알 수 없는 블라인드 북,
서점을 운영하는 부부를 소개하는 공간,
'이달의작가' 코너에서 만난 커트보니것까지
온통 마음을 뺏어가는 것들뿐이었다.
지나가다가 잠시 들른 책방 소리소문에서
나도 모르게 2시간을 보냈다.
제주시에 위치한 카페 어반르또아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맛있는
얼그레이크림라떼를 한잔 마시고
서귀포시에 있는 사진관으로 넘어가는 길,
중간에 위치한 책방소리소문은
그저 경유지에 지나지 않았었는데
기존 목적지 사진관을 포기하고
소리소문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드라마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우리 단이가 생각나는 코너도 있었다.
블라인드 북
"어쩌면 당신의 '인생 책'일 수 있는
특별한 책을 선물합니다."
어떤 책인지 상상해볼 수 있는 키워드가
#해쉬태그로 적혀 있었다.
이달의 작가는 커트 보니것
작가의 책 중에서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제5도살장>
이 두 권을 인상 깊게 읽었고,
특히 <제5도살장>은 쉬운 내용임에도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 엉켜있어서
다른 어느 책보다도 심도 있게 읽었다.
덕분에 잘 잊어버리는 내가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만큼은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이달의 작가 코너가 더욱 반가웠다.
커트 보니것의 작품을
필사해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이 담긴 필체로
앞사람이 마친 곳에서부터
원하는 데까지 필사를 한 후
'몇 페이지 몇 번째 줄'이라고 기록해둔다.
그럼 다음 사람이 뒤이어서 필사를 한다.
테이블 위 종이에는 커트 보니것뿐 아니라
다른 유명 작가들의 명대사가 적혀 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위대한 개츠비>
개인적으로 <위대한 개츠비>는
별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여기에서 만난 명대사가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다.
정말 좋아하는 말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벽지를 뜯다가 나온 옛 신문의 흔적이
그대로 살아 있는 벽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이 좁은 길 끝에
이 책방을 운영하는 부부의 이야기가 있다.
많이 아팠던 아내의 이야기와
이 곳 제주에서 책방을 시작한 이야기
가만히 읽어 내려가다가 마음을 뺏겼다.
실은 식물엔 관심도 없으면서
'아무튼, 식물'이라는 책을 한 권 구입했다.
식물을 좋아하는 친구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런데 1월에 사 온 이 작고 얇은 책을
아직도 못 읽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시간에 도착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나와보니
날이 개고 있었다.
구름 잔뜩 낀 하늘에
햇볕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갑자기 목적지가 바뀌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고 나오는 길
"맞다, 나 여행 중이지"
하며 한껏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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