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여행을 함께 한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거야>, 그리고 <나만 위로할 것>의 작가 김동영.
에세이로만 접했던 그였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그가 쓴 소설을 읽게 되었다.
그 분이 소설을 냈다는 소식을 따로 들었던 건 아니고,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을 쭉 훑어보는데 익숙한 이름이 보여 작가 소개를 보니,
내가 아는 그 김동영 씨, '생선'으로 더 많이 불리는 그 분이 맞았다.
궁금할 수밖에.
여행에세이를 쓰던 분이 어떤 이야기의 소설을 썼을까.
이 이야기는 하나의 사랑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랑니에 있는 줄기세포를 이식함으로써 현재의 젊음을 평생 유지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된 시대에 대한 이야기.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외모만은 어느 한 시절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어쩌면 우리가 간절히 원할지도 모르는 시대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 가상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끼고, 소름이 끼친다.
그리고 지루하다. 더이상 하고 싶은 것도, 만나고 싶은 사람도, 가고 싶은 곳도 더이상 없어져버렸다.
이제 아무런 의지나 욕구가 남아 있지 않은 여든 아홉 살 할아버지의 이야기.
"치료가 끝나고 몸 관리만 잘하시면 삼십 년은 문제없이 건강하실 거예요"
젊은 주치의가 말한 숫자에 충격을 받았다.
삼십 년?
기운이 빠졌다.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내가 지금 몸시 피로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피로 때문에 삼십 년을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내 피로를 이해해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내가 늙지도 죽지도 않는 뱀파이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차라리 억울함에 가까웠다. '정말 나는 불사의 시대를 살고 있구나. 죽음도 이젠 나를 피해 가는구나.' 207
누군가 그랬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배움을 끝내고 싶었고 관심도 없었다. 얼마나 더 알아야 하고 얼마나 더 많은 기억들을 만들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날 지치게 했다. 255
나는 지치고 지쳤다. 더 살아간다는 것에, 그리고 지난 과거를 기억하는 것에.. 256
"난 이 세상을 싫어하지는 않아. 다만 기약 없이 몇십 년을 이곳에서 별다른 희망과 살아갈 이유 없이 버텨야 한다는 게 자신이 없을 뿐이란다." 261
사실 읽다보면 조금 지루해진다.
이야기 초반부에는 흥미로운 전제와 귀여운 고양이 눈 소녀의 발랄함 등으로 재미있었는데
후반부로 가면 시간의 방대함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나니.
지금 이 삶이 즐거운 건,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젊음도 한 때, 내 삶도 결국 한 때이기 때문에 현재가 이토록 소중한 것이구나. 하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난 좀 더 신나게.. 놀아야겠다. (흐흐)
그런데 이 책 제목,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라는 말이, 꽤나 슬프게 들린다.
누군가가 이렇게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 떠난다면.
주인공: 고양이 눈 소녀, 카페 주인 J, 할아버지 (나)
"저 아이들, 마치 다른 세계의 사람들 같죠?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을 텐데. 그저 부러울 따름이에요. 아마 저 아이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죠?" 43
그날 이후 아주 작은 계획을 세웠다.
젊었을 때 좋아하고 열광했던 걷슬에 대한 기억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출판을 하거나 어딘가에 기고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었다. ... 어떤 날은 내가 처음 산 CD에 대한 이야기를, 또다른 날에는 내게 시를 읽는 즐거움을 알려준 여자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내가 여행하던 시절 겪었던 이야기들을 글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89
나는 대답 대신 그녀에게 물었다. 그 질문은 그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우리 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었다.
"넌 백 년을 넘게 살아낼 수 있겠니? 아무리 늙지 않는다 해도?" 262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젊음이 아니라
찬란한 시절이다
[헤밍웨이의 책]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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