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김애란 소설은 후회가 없다.
믿고 읽는 작가.
선배 언니가, 지하철에서 이 책 읽다가 눈물 참느라고 혼났다는 얘기를 해서 한참동안 시도해보지 못했던 책.
책 읽다가 혹은 영화 보다가 우는 일이 잦아서
'날 울리게 할 것이 예상되는 작품'이라고 하면 일부러 피했다.
지하철에서 눈물 참기가 얼마나 힘든데.
울다가 휴지 찾는데, 내 가방엔 휴지도 없어. 그럼 얼마나 당황스러운데.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아직 읽지 않고 남겨둔 그녀의 작품이 있었다는 걸.
김애란 소설이면 다 읽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눈에 띈 두근두근 내 인생.
마치 한 계절 지나 입게 된 겨울 코트에서 발견 한 만원짜리 지폐를 마주한 듯한 느낌.
역시 또 한 숨에 읽어나갔다.
주인공: 아름이, 어머니 미라, 아버지 대수, 친구 한수미, PD아저씨 승찬,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그러니까 너는,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50
내게 피부가 있다는 걸, 심장과 간, 근육이 있다는 걸 매번 상기해야 하는 건 고단한 일이었다. 육체와 정신이 아무리 친밀한 관계라 해도, 가끔은 반드시 떨어져 있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연인들처럼, 혹은 사이좋은 부부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이 부러웠다. 97
인간만큼 자기 얘기 듣길 좋아하는 동물도 없다던데, 이런 이야기라면 정말 몇날 며칠이고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53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그래서 아직 기도를 못했어요.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런 뒤 나는 겸연쩍은 듯 말을 보탰다.
"하느님은 감기도 안 걸리실 텐데. 그죠?" 171
처음 보는 예쁜 단어. 그걸 봐도 나는 살고 싶어지지. 271
"그럼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도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
".........."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땅에 닿자마자 금방 사라질 텐데." 287
'어릴 때 나는 까꿍놀이라는 걸 좋아했대. 아버지가 문 뒤에서 까꿍! 하고 나타나면 까르르 웃고, 감쪽같이 사라진 뒤 다시 까꿍! 하고 나타나면 더 크게 또 웃었다나봐.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그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거라더라. 그런 걸 배워야 알 수 있다니. 그렇게 작은 바보들이 어떻게 나중에 기술자도 되고 학자도 되는지 모르겠어.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 했던 걸까. 내가 잠든 새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 318
그러곤 어머니가 '정말?' 하고 물을 때, 단어의 뒤꿈치가 사뿐 들리는, 그 가볍고 다정한 억양이 퍽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345
+ 53, 75, 121, 129(눈 이야기, 시), 208, 245(릴리 슈슈의 모든 것, glide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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