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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한 달 전에 하고 싶었던 말


Ep1.


"그 때 왜 안 왔어?"

"그 때요? 아.. 일이 있었어요."

"무슨 일?"

"그냥, 집에 갔어요."

"그것만 말해봐. 집에 간 이유가, 너 때문이야, 그 때문이야?"

"그게 왜 중요해요?"

"그냥, 너가 얼마나 관대한 사람인지 - "






Ep2.


자주 가던 카페(A)가 한 곳 있었다. 커피도 맛있고 사장님도 친절하시고 얼굴도 기억해주셔서 들르면 안부 인사를 물어주시던 곳이었다. 약 2년 넘게 알고 지내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다른 카페를 찾게 되었다.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우선, 하루 커피 섭취량을 줄여보고자 했다. 그리고 씀씀이를 줄이려고 보니, 커피에 쓰는 돈을 아끼는 것이 가장 쉬워보여서 어느 날의 출근 길에 결심을 했다. '이제 커피는 주1회만!' 그렇게 그 날은 A 카페에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커피라는 기호 식품이 이렇게 지극히 일반적인 이유 따위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몇 번의 유혹을 뿌리치다가 결국 대안으로 찾아낸 또 다른 커피숍(B), 'take out 하면 아메리카노 1,000원'이라는 곳엘 가기 시작했다. 주 2-3회 들러도 A 카페 주1회 가는 값과 비슷했다. 


그러다가 내가 한 번, 실수를 했다. B 커피를 손에 든 채 A 카페에서 파는 빵을 사러 들렀다. 중간에 약 2시간 가량의 텀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B 커피를 들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오랜만에 만난 단골 손님이 B 커피를 손에 든 걸 본 사장님의 서운한 표정과 아쉬운 소리, "거긴 라떼 얼마에요?" "3,500원이요." "어머, 여기랑 거의 차이도 없는데..." 하필 그 날은 아메리카노로는 충족되지 않는 마음에 마이 페이보릿 아이스라떼를 사마신 날이었다. 사실 난 그동안 천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셔왔으며, 어느 날엔 커피를 아예 마시지 않기도 했는데 어쩌다보니 '그동안 여길 오지 않았던 이유는 그 곳 커피를 마셔왔기 때문'인 손님이 되었다.  양 손 가득 빵을 사왔는데, 마음은 영 불편했다. 


그 뒤로는, A 카페 앞을 지나갈 일이 있으면 부러 얼굴을 돌렸다. 밉거나 싫어서가 아니라 '미안해서' 피했다. 고객의 입장에서 어느 카페를 가든 그것은 자유이기 때문에 굳이 미안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난 굳이 미안했기 때문에 더더욱 애써 돌아돌아 다른 카페엘 가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은,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한다. 


그러니까, 자주 가던 카페엘 가지 않게 된 이 작디 작은 일화, 그 속에도 사소하지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Con.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굳이 그 곳에 가지 않았던 데에는 단순히 겉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생각보다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가 얽혀 있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숨은 사정을 알지 못한 채 'A : B = 관대함 : 관대하지 않음'으로 도식화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그 얕디 얕은 생각에


분명 기분이 나쁜데 왜 나쁜지 설명하지 못해서, 무려 한 달도 더 지난 일인데 이제 와서 얼굴 보고는 뭐라 못하겠고 이렇게 글로나마 해소하는 내 모습이, 내가 보기에 영 멍청해보이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이유를 찾아내서 속이 좀 편하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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