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이후, 오래 짝사랑해온 사람과 연애하는 심정으로 글을 썼다. 한 문장, 한 단락, 한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그 자체로 행복할 수 있었다. 몇 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고작 몇 줄을 쓰는 그 지지부진한 시간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게 했다. 몰두해서 글을 쓸 때만 치유되는 부분이 있었다.
(중략)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중에서
『쇼코의 미소』라는 책 제목만 백 번은 넘게 보았다. 좋다고 좋다고 하는데, 너무 좋다고들 하니까 이상하게 망설여졌다.
난 별로면 어떡해, 하는 정말 쓸데 없는 걱정, 과
읽다가 하도 울었다는 사람이 많아서 하, 나 눈물 짜내는 소설 안 좋아하는데, 하는 괜한 거부감
사람들 말 잊고 카페에서 첫 단편을 읽다가 눈물을 참는다고 아주 혼났다. 이 책은 꼭, 집에서 읽는 것이 좋다.
총 일곱 편의 단편 중, 네 편의 단편에서 눈물을 흘렸고,
마지막 단편 「비밀」을 읽으면서는 정말 꺼이꺼이 엉엉 마음껏 소리를 토해내며 울었다. 집이었고, 나뿐이 없었다. 다행이었다.
『쇼코의 미소』에 수록된 단편은 총 일곱 편으로, 다음과 같다.
「쇼코의 미소」, 「씬짜오, 씬짜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
모든 단편에서 아주 가까운 두 사람이 나오고, 그 두 사람이 결국 헤어지고마는 일이 발생한다.
최근 유독 헤어짐이 많았던 시기였기에, 어쩌면 더욱 공감하고, 슬퍼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답답했고.
「비밀」에 등장한 손녀 지민과 할머니는, 꼭, 반드시 꼭, 만날 수 있었어야 했는데. 그랬어야 했는데.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미카엘라」와 「비밀」을 읽었으면 한다.
「쇼코의 미소」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24
「씬짜오, 씬짜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90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든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그리고 그 빗장 바깥에서 서로에게 절대로 상처를 입히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 같이 계를 하고 부부 동반 여행을 가고 등산을 했다. 스무 살 때로는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주고받으면서. 그때는 뭘 모르지 않았느냐고 이야기하면서. 116
「한지와 영주」
우리는 싸움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를 견뎠다. 감정을 분출하고 서로에게 욕을 해서 그 반동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싸움도 일말의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받지 않았다.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나쁜 건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 무지 안에 있었다.
우리는 예의바르게 서로의 눈을 가렸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야 내가 먼저 그의 눈에서 내 손을 뗐고, 우리는 깨끗하게 갈라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기에 그 이별은 우리 사이에 어떤 사랑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130
관계가 이런 식으로 끝나버린 건 미화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178
「먼 곳에서 온 노래」
선배의 목소리가 작게 떨렸다. 진심을 말할 때, 선배의 목소리는 언제나 조금씩 떨렸다. 선배는 말할 때 감정이 배어나오는 나약한 습관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었다. 201
「미카엘라」
여자는 옆에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노인을 바라봤다. 이 노인은 얼마나 여러 번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어버렸을까.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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