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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 저에게는 지원이보다 다섯 살 많은 딸이 있습니다. 딸은 커서 우주비행사와 과학자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딸이 살아갈 세상은 제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되어야 하고, 될 거라 믿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 모든 딸들이 더 크고, 높고, 많은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2014 AWARD BEST BOOK 5를 꼽을 때, 번외편으로 BEST 작가의 말도 함께 꼽았었다. 

제 17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귀를 기울이면』 http://youneverknow.tistory.com/166


"… '너무 길다'는 이유로 내 소설을 단 한 줄도 읽어주지않은 남편, 그래도 고마워. 살림도 안하고, 돈도 안 벌고, 소설만 쓰고 있는 마누라랑 살아준 게 어디니.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딸, 많은 시간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 사랑한다, 사랑하는 방법이 모두 다른 것 뿐이야." 


그 때도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작가의 말인데, 이번 작가의 말에도 딸이 등장했다. 






입사 동기 강혜수 씨가 하루 휴가를 냈다며 아이 내복, 기저귀 그리고 립글로스를 사 들고 김지영 씨의 집에 놀러 왔다.

 "립글로스는 뭐야?"

 "나 지금 바른 거. 색깔 괜찮지? 우리 피부톤 비슷해서 잘 받는 색도 비슷하잖아."

엄마도 여자라거나, 집에만 퍼져 있지 말고 좀 꾸미라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선물한다. 끝. 깔끔하다. 김지영 씨는 기분이 좋아졌고, 그 자리에서 립글로스부터 열어 발라 보았다. 정말 김지영 씨에게 잘 어울렸고 기분이 더 좋아졌다. 



(중략)



"너무 귀엽고 예쁘다. 그렇다고 내가 낳아 키우고 싶다는 건 아니고."

"응. 귀엽고 예뻐. 그렇다고 언니도 낳아 키우라는 건 아니고. 진짜진짜 아니고. 근데 혹시 낳아 키우게 되면 지원이 옷 깨끗하게 뒀다가 물려줄게." / 152






내가 서른이 되기는 했구나, 스물아홉과 서른은 너무 다르구나, 싶다.

스물아홉이나 서른이나 똑같지 뭐, 라고 하던 사람들 얘기는 다 거짓이야.

주변에서 결혼 얘기를 꺼내는 빈도수부터 확 차이가 나고, 그에 반응하게 되는 내 마음부터도 예전과는 천지차이.


명절 가족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던 적이 없던 내가, 올 추석엔 기필코 안가고야 말겠다, 하고 있을 정도니.

올 설에 겪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

내가 결혼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인 냥 말씀하시는 어른들을 위하여 

그럼 결혼할 때쯤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걸 꾹꾹 참았다.



그럼에도 일찍 결혼하여 아이 낳고 잘 살고 있는 주변 친구들 보면 그렇게 대견하고 또 장할 수가 없어서,

아이 낳기 전보다도 더 자주 연락하고 찾아가면서 친구들을 챙겼다.

소설 속 입사 동기 강혜수 씨처럼, 친구의 아이가 아니라 정말 내 친구를 챙겼다.

결국 아이 선물은 한 적이 없다는 말이긴 한데(ㅋㅋ) 그건 좀 미안해도

난 아이 엄마가 아닌 내 친구로서의 그녀에게 필요한 것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 낳은 주변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또 직업상 아이 엄마를 만날 일이 많은데,

그 속에서 혹시 내가 말실수한 적은 없는지, 아니, 생각만으로도 엄마, 혹은 전업주부의 위치를 쉽게 본 적은 없는지, 되돌아보았다. 

혹여라도 내가 그러한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을까봐, 그렇게 상처받은 사람이 있었을까봐 걱정하는 걸 보아

나도 모르게 내 잠재의식 속에서, 그 위치를 쉽게 보았던 것 같다. 아 완전 반성하며 읽은 책..... 후아 (미안해!!!!!!!)



아이를 낳고, 내가 엄마가 되는 것, 을 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사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지금 느끼는 행복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분명, 행복할거야. 그렇지만 그 행복의 종류가 달라지는거지.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들, 가령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 책 읽으러 카페에 가고, 혼자 영화를 보고, 가끔 강화도에 가 콧바람을 쐬는 것 등을 통해 느끼던 행복은 이제 안녕, 대신에 지금 내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행복을 느끼게 되겠지. 


그러니까 결국, 행복하지만, 쓸쓸할 것 같은 기분.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 더 나아가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일, 그 모든 것들이

너무 생생하면서도 담담하게 적혀 있어 더욱 읽기 힘들었던 책. 읽다가 몇 번을 멈추고, 심호흡했던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