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에 반복하여 나오는 '계속해보겠습니다'가 주는 느낌은,
이야기를, 계속해보겠습니다. 계속, 이어가보겠습니다. 들어보시겠어요, 하는 것 같았는데
마지막의 그, 계속해보겠습니다, 는 마치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살아내겠습니다.
이렇게 태어나보겠다고 몇 번의 태몽으로 계속 꿈에 나오는 이 아일 세상에 내보이고서,
어디 한 번, 어떻게든 살아보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그 같은 표현이 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 굉장히 신기했다.
모세씨는 어떤 사람이야?
그런 질문을 받고 어떤 사람인가, 하고 잠시 생각합니다.
... 말이 별로 없는 사람.
집에 한번 데려와,라는 말에 나나는 흔들립니다.
집에 데리고 올 수 있나, 그것을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 집으로 모세씨를 데리고 오다니. 나나는 그렇게까지 모세씨를 좋아한, 하고 생각해봅니다.
좋아해.
좋아합니다. 금주씨를 향한 애자의 전심전력의 사랑, 정도의 사랑은 아니더라도 나름의 밀도와 정도로는 모세씨를 좋아합니다. 말도 없고 애교도 없고 요령도 없는 사람이지만 보고 있으면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모세씨를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것과 모세씨를 이 집으로 불러들이는 것은 별개,라고 단호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집으로 모세씨를 불러들여 소라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나나의 세계에서 가장 연한 부분을 모세씨와 만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기 오라버니만이 접근하고 접촉할 수 있던 그 세계를, 금주씨의 죽음과 이미 상당히 죽어버린 애자와 뒤틀림이 담긴 세계를 열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나나의 내면에서 그 부분은 잠잠한 듯 보여도 끊임없이 떨고 진동하는 곳. 가장 민감한 비늘이 돋은 곳. 무엇보다도 나나는 소라를 애자를 나나 본인을, 실제라기보다는 나나 내면의 그들을 모세씨에게 열어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는 한 건지 좀처럼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이대로,라고 생각하는 마음과 부숴버리자, 그만 깨버리자고 생각하는 마음과 그밖의 마음이 뒤섞여 최근에 나나의 내면은 꽤 시끄럽습니다. /120
무섭지 않아? 하고 소라가 묻습니다. 아이를 낳고 부모로서 영향을 주고 그 아이가 뭔가로 자라가는 것을 남은 평생 지켜봐야 한다는 거.. 계속 걱정해야 하는 뭔가를 만들어버린다는 거.. 무섭지 않아? 하고 말입니다. 나나는 무섭지. 아직은 실감이고 뭐고 부족하지만, 무서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지만 모르니까 무섭다고 느끼는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무섭더라도 감당하겠다고 마음먹었어. 각오하고 있어. 각오가 필요할 정도, 라고 생각하면 조금 비장해지지만 그래도 각오하고 있어. 실은 얼마큼 각오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도대체 뭘 각오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라서 자신감 같은 것과 더불어 호흡마저 희박해지는 느낌이지만 어쨌든 각오하고 있어 그래도 나름,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123
열네살 때 나는 너를 만났다. 나보다 몸이 작았고 아이들 사이에서 말도 행동도 별다르게 튀는 일이 없는 소년이던 너는 자주 멍든 채로 등교하는 동급생이었다.
너의 부모는 둘 다 교육자로 아버지는 사립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너는 네 어머니가 선생으로 있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육년 내내 너의 담임은 그녀의 동료였다. 오랫동안 너는 네 자신이기보다는 선생의 자식이었다. 네가 다니는 학교에서 그것을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고 네가 인근의 중학교로 진학한 뒤에도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었다. 너를 아는 사람이라면 너의 부모를 알았고 그런 이유로 너는 항상 이상하게 고요한 주목을 받았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가도 네가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할 때 저 녀석의 엄마가 선생이었지, 아버지가 선생이었어, 하고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게 되는 패턴이었다.
나는 네가 백 미터를 달릴 때 속도를 조절하는 것을 눈치챈 적이 있다.
너는 튀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든 조용히 무리에 섞여 있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고 공부나 운동을 잘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못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번은 국어 선생이 수업 중에 농담을 하다가 치약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중학교에 진학하고서야 영문법을 접하고 영어를 배우던 시절이었다. 무심결인 듯 toothpaste라고 대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내가 그 공허하고 퉁명스러운 발음에 놀라 돌아보았듯 다른 동급생들도 너를 돌아보았다. 너는 당황한 듯 고개를 숙인 뒤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았다. /17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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