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한 조각의 땅에 품어왔던 생각과 의지를 펼쳐놓는다. 그리고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과 색과 향기를 창조해낼 수 있다. /17
누군가를 부드럽게 대하고 배려하는 것은 그렇게 대하는 것을 스스로 필요로 하는 사람만이 잘할 수 있다. 온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물을 다정하게 가늠하고, 정신적인 이유를 찾아서 보고, 모든 인간적인 나약함을 잘 이해하는 일은 오직 고독한 시간의 괴로운 정적 속에서 방해받지 않고 생각에 잠겨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39
이런 식으로 때로는 내가, 때로는 그가 여름을 위해서, 9월을 위해서, 가을을 위해서, 이것저것 좋은 것과 유익한 것을 생각해냈다. /47
날마다 작은 기쁨들을 될 수 있으면 많이 경험하고, 좀 더 거창하고 노력이 들어가는 즐거움은 아껴두었다가 휴가 때나 좋은 날 나눠서 맛보라. 시간이 부족하고 재미가 없어서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것을 권하고 싶다. 일상적으로 구원을 받고 짐을 벗고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 아니라 작은 기쁨이 필요하다. /74
올여름 나는 언짢았다. 대부분 궂은 날씨와 아픈 몸 때문이었고 이런저런 일들이 내 여름날을 앗아가버렸다. 그러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다르다. 무더운 마지막 밤들이 이어지고 최초로 과꽃이 피어나는 이 시기에, 나는 내 몸의 모든 숨구멍을 통해서 자연을 빨아들인다. 나는 1년 중 이때 가장 풍요로워진다. /101
인류가 원래 항상 자기가 좋아하는 식으로만 하게 되어 있지는 않으며, 항상 현실적이거나 유용한 것에만 취해 있지도 않다는 것, 그토록 탐욕스럽거나 계산적이지만은 않음을 알게 된 것은 내게는 근사하고도 묘한 경험이다. 113
힘든 시절에는 수동적으로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면서 자연에 몰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우리 같은 시인들은 뭄엇보다도 동시대의 사람들이 겪은 것들을 표현해야 할 사명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들어서가 아니라 직접 체험해서 알게 될 때에만 할 수 있다. 그것이 격앙된 방식이나 감상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든, 아니면 우습거나 탄식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든 어떤 경우에라도 필요하며, 외롭게 어린아이의 걸음으로 발전해가는 인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 오늘 겪는 커다란 고통은 우리에게 모든 미족과 모든 종류의 존재와 고통을 포용하는 연대감을 부여한다. 견디기 어려운 것일지라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말로 표현되어야 한다. /125
나는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아름답게 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내 거주지를 마음대로 고를 수 있게 된 시기부터 정말 늘 특별하게도 아름답게 살아왔다. 때로는 원시적이고 별로 안락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 창 앞에는 늘 독특하고, 위대하고 광활한 풍경이 펼쳐졌다. /219
그것은 정원을 가꾸는 가운데 느끼는 창조의 기쁨이며 창조자의 우월감이기도 하다. 한 줌의 흙을 자기 생각과 의지에 따라 형상화할 수 있으며, 여름을 위해서 좋아하는 열매들이나, 아끼는 색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향기들을 창조할 수 있다. 작은 화단, 몇 평 안 되는 벌거벗은 땅을 미소 짓는 색채의 물결로 바꿔놓는 것이다. /223
'문화생활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문학동네 (0) | 2017.04.30 |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난다 (0) | 2017.04.26 |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창비 (0) | 2017.04.11 |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창비 (0) | 2017.04.05 |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이창실 옮김), 문학동네 (0) | 2017.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