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속으로 두 권의 산문집을 읽었다. 괜찮은 산문집으로 알려져 있는 것들이었지만, 역시나 내게는 소설이 아닌 책을 읽는 눈의 힘이 부족하다. 너무 자주 쉬어갔고, 집중하지 못했다. 음 그래도 두번 째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읽을 땐,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을 때보다는 나아졌던 것 같다.
아래 내가 데려온 문장 중에, "우리가 일상 쓰는 언어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구절이 있다. 나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놀라움을 느낀다. 소설이나 산문집이나 결국 우리가 일상 쓰는 언어로 이루어진 글인데 왜 내겐 전혀 다르게 읽히는 것일까. 모르는 단어 하나 없는데, 두 번 세 번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내겐 너무도 신기하다.
내게 [밤이 선생이다]를 추천해 준 선배가 있다. 그 선배가 추천해주는 책은 내게 두 가지로 분류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내겐 너무 어려운 책이고, 두 번째는, 정말 좋은 책이다. 정말 좋은 책이라 함은, 내가 평소에 읽는 종류의 책은 아니지만 읽어보니 이해하기에도 쉬우며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라는 것인데, [밤이 선생이다]가 바로 두 번째에 속한다. 아주 오래 전, 최소 2년 전 추천해준 이 책을 잊지 않고 이제라도 읽은 건, 그 선배의 추천력을 믿었기 때문에! (물론 50%의 확률일지라도)
몽유도원도 관람기
그래서 몽유도원도의 관람은 일종의 순례 행렬이 되었다. 사람들은 반드시 몽유도원도가 아니라 해도 위대한 어떤 것에 존경을 바치려 했으며, 이 삶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저마다 자기들이 서 있는 자리보다 조금 앞선 자리에 특별하게 가치있는 어떤 것이 있기를 바랐고, 자신의 끈기로 그것을 증명했다. 특별한 것은 사실 그 끈기의 시간이었다. 그 시간은 두텁고 불투명한 일상과 비루한 삶의 시간을 헤치고 저마다의 믿음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전리품이었기 때문이다. /27p
김지하 선생을 추억한다
내가 고교 1학년일 때, 서울대 미학과 학생이었던 김지하 선생은 방학중에 목포에 내려와 자기 모교의 문예반 후배들을 이끌고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했다. 나도 그 연극을 구경했지만, 그때는 지하라는 필명은 물론 김영일이라는 본명도 알지 못했다. 내가 그 연극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감명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해할 수는 없어도 거기에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았으며, 우리가 일상 쓰는 언어로 우리가 사는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연극은 내가 대학으로 진학할 때 학과를 선택하는 데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29p
맥락과 폭력
... 맥락을 따지자는 말의 맥락까지 묻혀버릴 판이다.
맥락을 따진다는 것은 사람과 그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다. 맥락 뒤에는 또다른 맥락이 있다. 이렇듯 삶의 깊이가 거기 있기에 맥락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97p
역사는 음악처럼 흐른다
그는 벌써 시인으로, 소설가로, 문화와 예술 평론가로, 역사가로, 게다가 번역가로, 백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앉아 있는 독자들을 서게 하고, 서 있는 독자들을 주저앉혔으니, '예술가' 밖에는 그를 통괄하여 부를 수 있는 이름이 없겠고, 이 책이 알려주는 바가 그것이기도 하다. /101-102p
영어 강의와 언어 통제
'안습'도 '안쓰'도 곧 인터넷에서 사라져 이제는 사어가 되었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수많은 신어와 축약어들의 운명이 이와 다를 수는 없다. 우리 기억의 깊은 자리와 연결되기도 전에 사라진 말들을 어느 날 우리가 다시 만난다 해도 우리의 마음이 흔들일 일은 물론 없을 것이다. /125p
시가 무슨 소용인가
시인이 제 몸을 상해가며 시를 쓴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을 새로운 깊이에서 통찰한다는 것이며, 사물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개척한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저 대중 소비적 '시'의 소구력과 성공에 비한다면, 새로운 감수성과 이미지의 생산이 목표인 본격적인 시의 수요는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하다. 그러나 시가 생산한 것은 어떤 방법과 경로를 거쳐서든 대중물들 속에 흡수되고 전파된다. 시는 낡았고 댄스 뮤직은 새롭다고 믿는가. 사실을 말한다면 시에서는 한참 낡은 것이 댄스 뮤직의 첨단을 이룬다. /184p
유행과 사물의 감수성
한국이 특별히 유행에 민감한 나라라는 것은 모든 것이 가장 빨리 낡아버리는 나라가 바로 이 나라라는 뜻도 된다. (중략) 마음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오직 앞이 있을 뿐 뒤가 없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이 슬픔이 유행을 부른다. 사람의 마음속에 세상과 교섭해온 흔적이 남지 않고, 삶이 진정한 기억으로 그 일관성을 얻지 못하면, 이 삶을 왜 사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삶이 그 내부에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밖에서 생산된 기호로 그것을 대신할 수밖에 없다. 가지가지 유행이 밖에서 생산된 바로 그 기호다. 밖에서 기호를 구해 의미의 자리를 메울 때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아야 한다. 밖의 기호 속에는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진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의 문화는 열등감의 문화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놓인다. /191-192p.
논술고사 답안지를 넘겨보며
세상에는 누가 보아도 그렇다고 수긍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우리가 완벽하게 진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도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주관적 신념에 불과한 것인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는 진리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진실은 국면에 따라 바뀌고, 그것을 대하는 사람의 변덕스런 관점만 헛되이 떠돌아다니는 것일까?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을 밝혀내는 것일까, 자기 처지에 맞는 관점과 기준에 따라 그 사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일일까? /222-223p
출제자들이 필경 염두에 두었을 의견, 진실에 대한 추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의 의견 속에 들어갈 자리를 마련하고, 그로써 자신의 생각을 다시 성찰하고 그 깊이와 폭을 넓혀, 한 주관성이 다른 주관성과 만날 수 있는 전망을 내다보고, 인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이라도 사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견해가 오히려 수줍은 목소리다. /224p
은밀한 시간
나는 누구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시간을, 다시 말해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남이 모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식구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가지라고 권한다. 애들은 그 시간에 학교 성적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소설이나 만화를 보기도 할 것이며, 내가 알고는 제지하지 않을 수 없는 난잡한 비디오에 빠져 있기도 할 것이다. 어차피 보게 될 것이라면 마음 편하게 보는 편이 낫다고 본다. 아내는 그런 시간에 노래방에 갈 수도 있고, 옛날 남자친구를 만나 내 흉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늘 되풀이되는 생활에 활력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여름날 왕성한 힘을 자랑하는 호박순도 계속 지켜만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에 자랄 것이며, 폭죽처럼 타오르는 꽃이라 한들 감시하는 시선 앞에서 무슨 흥이 나겠는가. 모든 것이 은밀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281p
두 개의 설날
어린 왕자가 여우에게 "의례"가 무엇이냐고 묻자, "의례란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하고, 어떤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우는 대답한다.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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