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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책

[누운 배] 이혁진, 한겨레출판












얼마만의 포스팅인지, 기억도 안난다. 책 읽을 시간도, 글을 적을 여유도 없었다는 건 결코 좋은 일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자리를 분명 다른 무언가가 채워주었을 것이다. 문자가 아닌 사람이, 일방이 아닌 쌍방으로,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아 그래도 생활 리듬이 무너진 것은 분명해. 되찾아야해, 리듬을!


































[밤과 선생이다]를 추천해준 그 선배에게, 최근에 또 한번 추천을 받았다. 그때도 말했지만, 그 선배의 추천책은 내게 모 아니면 도다. 너무 어렵거나, 너무 좋거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내가 누군가에게든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렇지만 너무 좋았다고 얘기할 수 있기까지, 초반 1부를 읽는 데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누운 배]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전체 분량의 1/3 정도에 해당하는 1부를 읽는데 2주가 걸렸다. 그리고 2/3에 해당하는 나머지 2부를 하루만에 읽었다. 내가 요근래 책 읽을 시간 없이 지냈던 것도 있지만 1부는 정말 바쁜 시간을 쪼개 읽고 싶은 마음이 콩알만큼도 들지 않을만큼 재미가 없었다(ㅋㅋ) 제목대로 이것은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배' 이야기인데, 배가 어느날 누워버렸고, 그 배를 일으키려고 하는 회사,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난 정말 줄거리 요약을 못하는 듯) 일단 선박과 관련한 용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이 많았고, 회사 생활을 1년도 채 하지 않은 나로서는 회사 이야기와 관련해서도 공감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난 이 책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 어쩌면 그 선배 역시도 위로를 받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위로를 내게도 건네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닮은 면이라고는 2% 도 되지 않는 그 선배와 내가 동시에 위로를 받은 책이라면, 아마 그 외의 많은 사람에게도 분명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누운 배] 속 작중 화자 문 대리는 서른 두살, 약 3년 간 정착했던 회사에 사표를 내며 자유를 찾아 떠난다. 그리고 서른의 나는, 여태껏 자유만 찾아 돌아다니다가 이제야 정착할 때가 되지 않았냐고 자문하면서 지금 몸담고 있는 곳에서 최대한 오래 일할 생각을 하고 있다. 문 대리와 나 사이, 그 간극이 결코 좁지 않다. 그런데도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그동안 짧게 혹은 길게 일했던 곳들에서의 일들이 오버랩되면서, 문 대리는, 전혀 상관없을 듯한 그 연결고리로 이어져 온 내 그간의 일들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준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타이밍이다. 책과의 만남에도 타이밍이 있는데, 그 타이밍이 꽤 자주 맞아떨어진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누운 배]의 경우, 추천을 받아서 읽기 시작했을 뿐인데 놀랍게도 그 이야기 속에서 지금 내가 당장 듣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 용기 내지는 자신감을 얻은 것, 위로를 받은 것. 그런 것들 말이다. 나는 이것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삶의 문제에 맞닥뜨려 어떤 답을 구하고자 할 때마다 책을 읽고자 하는 건, 바로 이러한 타이밍 때문이다. (물론, 억지로 찾으려고 하면 잘 안되긴 하더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 전혀 다른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는 거지요.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젊기 때문에, 자신이 젊다는 것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랬나? 그저 몰리고 몰려 도망쳐왔을 뿐이라도 생각했는데. 황 사장이 말을 이었다. "우리 나이 사람들은 그걸 몰랐습니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볼 수 있다는 걸, 그게 젊음이라는 걸 몰랐어요. 대학 졸업하면 취직하고 취직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애 낳고 회사에서 승진하고, 그런 게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173


쓸데없는 일만 맡게 만든다고 생각한 기자 일 경험은 이렇게도 이어졌다. 사람 일은 알 수 없었다. /187


"왜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에게 뭘 주지 않는 걸까요? 사람이란 다 자기 앞에 선 사람에게서 꿈이나 이상 같은 걸 배우는 거잖아요." /297


"내가 항상 우리 부서 교육 시간에 하던 말이 있습니다. 배운다는 걸 똑같이 따라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따라 하는 건 배우는 방법이다. 따라 하려고 배우는 게 아니라 더 잘하려고, 가르치는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배우는 거다. 여러분 모두 아직 젊고 많은 일을 배워나갈 때니 이 말을 기억해줬으면 싶습니다. 우리가, 또 어떤 사람도 여러분보다 더 나은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먼저 태어났고 먼저 배웠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 뿐입니다. 그것이 선생, 먼저 난 사람이라는 말뜻입니다. 배우고 익히되 우리처럼 되지는 마십시오. 부디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298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결국 회사에서 제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려워도 전망이 있거나 아니면 제대로 배워서 내 기술로 삼을 교육이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연봉이라도 세야 할 것 같습니다. (후략)" /311


"사는 거 별거 아이데이, 문 대리." "네?" "지금이야 막막하고 답답하겠지만, 별별 생각 다 들겠지만 살아보면, 살고 보면 참 별거 아이라, 사는 거." 나는 웃었다. 감추고 억누른 불안과 두려움이 꿰뚫린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명심할게요." 하 고문이 덧붙였다. "연연할 것 없는 기라. 지나고 나면 다 좋은 것만, 좋았던 것만 남는데이." 하 고문과 한 마지막 대화였고 인사였다. /324


도망칠 필요가 없어졌다느 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글이었다. 한때 내가 잘한다고 인정받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랐지만 가장 먼저 도망쳐온 것이었다. 그 끝을 한번 보고 싶었다. 내가 최선을 다했을 때 어떤 것이 나오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했고, 그것만큼 궁금한 것은 없었다. 부정할 수 없이 나는, 내가 가장 좋고 궁금한,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왜 이런 인간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바람 풍을 바람 풍이라고 쓰고 싶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 같은 사람이 글을 쓸 이유는 없었다. /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