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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빨간책방

이동진의 빨간책방 11회 _ 물질로서의 책/ 미학으로서의 책


30분


"책이라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독서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제 생각에. 더군다나 디자인이나 이런 면에서 굉장히 훌륭하시잖아요. 일러스트레이션이라던지 뭐. 소설만 봐도 디자인에 대한 굉장한 관심들이 있잖아요. 맹인용 라디오 디자인이라던지, 이런 것들이요. 김중혁 작가님, 그러면, 책이라는 것을 디자인 적인 측면에서 혹은 책을 읽는 거를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도 좋아하시나요?"


"저는 책이라는 물질이 너무 좋구요. 최근에 제가 이북 리더기를 사가지고 열심히 보고 있는데, 물론 편리하긴 한데, 그 물질성이 없다보니까 좀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책이라는 게 단순히 읽고 뭔가 정보를 습득하는 거라기 보다 만지고 줄 긋고 낙서하고 뭐 장식용으로 꽂아 놨다가 뭐 어떻게.. 그런식의 물질이 있어야 책이라는 인식이 오는 거 같고, 저는 책을 깨끗하게 보시는 분들이 좀 안타까운 게 책은 최대한 더럽게 봐야 되는 게 맞는 거 같구요.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그래서 책을 더럽게 볼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 사란 얘기는 아니구요. 


"사란 얘기입니다.ㅋㅋ"


"책은 더럽게 보고 잘 보관해두면 10년 후에 그 책을 다시 들춰봤을 때, 내가 10년 전에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 그런 것들을 기록할 수도 있는 그 장소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물질로서의 책이 전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comment. 공감백프로. 아는 선배 중에 책을 정말 깨끗하게 보는 분이 있다. 그 분에게 책을 빌려 읽어야 했을 때, 줄을 긋거나 표지를 구기거나 꼭지를 접지 말라고 사전 경고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서재는 사회과학서적에 한해서 도서관 급인데 빌려 읽는 것이 결코 편치 않았던 선배. 물론 이 선배는 책을 나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고, 책에 메모하지 않는 대신에 컴퓨터에 문서로 저장하기 때문에 충분히 10년 후에도 그 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찾아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책을 더럽게 읽는 것이 좋다. 책 주인이 더럽게 읽은 책을 빌려서, 그 사람의 흔적을 함께 읽는 것은 더욱 좋다. 그 사람은 어느 부분에 공감을 했을까, 왜 그 부분에 줄을 그었을까, 그 사람을 궁금해하며 - 책과 함께 사람까지 읽는 그 행위가 좋다.




31분 34초


"제 경우에는 책의 물성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아까 오다가 그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왜이렇게 책을 좋아하나,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 자체도 좋거든요. 전 디자인 적으로 책이, 가장 완벽한 형태를 갖고 잇는것 같아요. 그 미스터 모노레일 보시면, 볼교라고, 사이비 종교 비슷한, 이상한 종교가 나오는데, 원을 숭배하는 종교거든요, 볼을, 그래서, 거기에 비유해서 얘기하자면, 원이라는 것은 가장 철학적인 도형같은데, 직사각형은 가장 미학적인 도형 같아요 저한테. 우리가 황금비라는 것을 얘기하잖아요 미적으로 이런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길게 하나 ㅋㅋ 1:1.618 이거든요. 이걸 우리가 황금비라고 하거든요"


"(하하하) 정상은 아니예요. (김중혁)"


"숫자에 제가 obsessed 되어있어서 그렇습니다 이해해주시구요. 책의 비율은 얼마가 될까 해서 일반적인 책을 오기 전에 재봤어요. 방청객 및 김중혁 일동 웃음 1:1.467 나오더라구요. 그러니까 거의 황금비에 가까운거죠. 미학적으로 책이 모양이 예쁘고, 또 책이라는 걸 을 방향으로 꽂게 되면 면이잖아요 근데 반대쪽으로 보게 되면 사실은 선의 집합이잖아요. 책을 펼치면 좌우 여백이 있잖아요. 가운데가 디자인이 있고. 문단이 나뉘어져 있고. 그쵸? 그래서 책이라는 것 자체가 디자인적으로나 물질로 굉장히 훌륭한 매체라는 생각이 들고. 그걸 딱 꽂아놓고 있으면, 밤에, 책 보면서 제목 상상 안하시나요?"


comment. 이런, 약간, 살짝 사이코스러운(절대 나쁜뜻아니고ㅋㅋ), 뭔가 미친 구석이 있는 사람, 매력적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3분 20초


"네 저는 책 제목 볼 때가 언제냐면 가끔씩 써야 할 단편 소설이나 장편 소설이 안 써질때 책등들을 쭉 보고 있으면 그 안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제목 하나에 모든 걸 함축하기 위해서  정말 가장 많이 노력을 들이는 게 서문 목차이겠지만, 제목이 가장 핵심이 들어있거든요. 제목들을 쭉 보다보면 거기에서 어떤 단어나 문장에서 약간 힌트를 받아가지고 새로운 문장을 쓴다던지 새로운 제목을 쓸 때도 많아요."


comment. 책등 이라는 표현이 예쁘다. 책은 모두, 등이 참 곧다. 등이 곧은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