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펭귄클래식 고전문학,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나는 정말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이 책이, 그 친구에게는 꽤나 유명한 책이었는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내 말에 적잖이 놀라는 모습이었다. 그 때가 마침 내가 고전소설의 매력을 알아가던 시기였기 때문에 냉큼 빌려왔는데, 역시 손에 쥐어진 것은 잘 읽게 되지 않는 법.. 무려 넉 달 이상을 우리집 책장에 고이 모셔둔 채 책등만 읽기를 백 번, 드디어 6월 말에 이 책을 집어 들었고, 7월 10일 오늘이 되어서야 마지막 장을 덮었다.
다 읽고나서는, 소설가 김영하가 <알쓸신잡>에서 한 이야기가 떠올라 이 곳에 옮겨본다.
[영상참조] http://www.gomtv.com/14815578
"어떤 의미에서 문학작품은 우리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존재하는 건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그런 경험 있지 않아요? 내가 어떤 소설책을 너무 감동적으로 읽어서 친구한테 권해요. 너도 읽어봐.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싶으니까. 그 친구가 읽고서는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해요. 재미가 없다든가 내 취향이 아니라든가, 아니면 내가 좋아했던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을 좋아한다든가 그러면 내가 알던 애와 다르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다른 게 정상이에요. 다른 게 정상이고, 똑같은 작품을 읽어도 감상이 천 개가 나와야 되고, 천 명이 읽으면. 그런 다양성의 세계를 받아들이기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 건데 한국의 국어 교육은, 다른 교육도 그렇지만, 정답은 정해져 있고, 너네들은 그 정답을 빨리 찾아내야 똑똑한 학생이라고 하는거죠. 그런데 그럴 순 없어요."
"다른 게 정상이에요." "그런데 그럴 순 없어요." 할 때의 김영하의 표정과 말투, 억양까지, 모든 것이 너무 좋다.
아, 김영하가 한 말을 이렇게 굳이 가져온 이유는, 나는 친구가 이 책을 왜 추천했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ㅋㅋ)
그렇지만 내가 좋아한 책을 그 친구가 그저 그렇다고 여긴 적도 있기 때문에,
아, 그냥 너와 나는 다르구나, 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김영하가 멋드러지게 말해주어서 너무 좋다.
[인물: 제롬, 알리사, 쥘리에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29p (마태복음 7장 13~14절)
"얘들아, 설사 부서져 있다 할지라도 하느님은 거기서 자신의 모습을 알아보실 거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한순간만을 언뜻 보고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너희가 싫어하는 내 누님의 모든 점도 다 그럴 만한 여러 가지 사건을 겪다 보니 생기게 된 것이고, 그 사건들을 너무나 잘 아는 나로서는 너희처럼 가혹하게 비난할 수가 없구나. (후략)" /47-48p
"제롬, '더 훌륭한 것', 그걸 생각해!"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솟았지만, 그녀는 계속 "더 훌륭한 것"이라고만 되뇌고 있었다.
"안녕! 이제 더 이상 오지 마. 사랑하는 나의 벗이여, 안녕히... 지금부터... '더 훌륭한 것'이 시작될 거야." /166p
나는 피아노 연습을 좋아했다. 날마다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국어로 된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은밀한 즐거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물론 그것이 어떤 외국어가 됐든 우리 말보다 더 좋아한다거나 내가 탄복해 마지않는 우리 작가들의 책이 외국 것에 비해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의미와 감정을 좇아가다 보면 느끼게 되는 약간의 난관과 그 난관을 차츰 더 잘 극복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느끼게 되는 자부심은 정신적 쾌락에 뭔지 모를 영혼의 충만감을 보태주는데, 그것 없이는 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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